
미중 유럽, AI 주도로 나눈 전략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AI) 기술 패권을 놓고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가운데, 한국은 이 세 축 사이에서 자국의 AI 정책 방향을 선명하게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크 매카시(Mark MacCarthy)가 지적한 대로, 미국이 엔비디아 H200 칩의 대중 판매를 허용했음에도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들의 구매를 막고 자체 AI 역량 개발에 집중하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이 경쟁이 단순한 기술 수출 분쟁을 넘어선 체제 간 충돌임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 구조를 정확히 독해하지 못하면, 정책은 뒤처지고 산업은 표류하게 된다.
미국은 국가 안보를 근거로 첨단 AI 칩의 중국 접근을 차단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엔비디아의 H200 칩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AI 칩 수출 통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잘 드러낸다. 미국 정부가 판매를 승인했음에도 중국 스스로 거부하는 방향을 선택했다는 점은, 중국이 이미 서방 기술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음을 뜻한다.
매카시는 이 상황을 두고 미중 기술 디커플링이 정책이 아니라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GGI·Global Governance Initiative)'를 통해 AI 안전과 국제 협력을 강조하는 외교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외교 당국자들은 서방의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접근 방식을 공개 비판하며, 다자주의적 AI 거버넌스 체계를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스트레이츠 타임스(Straits Times)는 중국발 영향력 행사 작전이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건설 논란 등을 활용해 미국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데도 동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방과 협력을 내세우면서도 정보전 역량을 동시에 운용하는 이중적 구도다.
한국 사회에 미치는 파장
유럽연합은 반도체, AI, 클라우드, 오픈소스 등 핵심 디지털 분야를 아우르는 '기술 주권 패키지'를 제시하며 역내 디지털 자율성과 복원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EU 공공 행정에서의 생성형 AI 도입을 분석한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JRC) 보고서는 기술 도입의 기회와 도전을 함께 다루면서, 책임감 있고 확장 가능한 생성형 AI 통합을 위한 정책 권고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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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전략은 미국처럼 봉쇄에 치중하지도, 중국처럼 지정학적 확장에 의존하지도 않는 제3의 경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삼각 구도 속에서 한국의 입지는 구조적으로 까다롭다. 안보 동맹은 미국과 묶여 있고, 경제적 공급망은 중국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규제 환경은 EU의 기준을 일정 부분 준용하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스마트시티 구축과 자율주행차 산업에 AI 기술을 접목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으나, 국내 AI 생태계를 자립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국제 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모순적 요구를 동시에 받고 있다. AI 분야에서 독자적 지위를 확립하려면 기술 개발과 규제가 서로를 저해하지 않고 상호 보완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미중 어느 한쪽에 기술적으로 종속되기 전에 자체 AI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 데이터 주권, AI 안전 기준 등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기준을 수립하지 못하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협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AI 정책이 단순한 투자 규모 경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기술 주권 확보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다.
미래를 향한 정책 방향 제언
AI 기술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AI가 적용된 스마트시티는 행정 효율을 높이고 주민 생활의 질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차는 교통 혼잡 완화와 탄소 배출 저감에 기여할 잠재력을 지닌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가 규제의 속도를 앞지르면 윤리적 공백과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AI 적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법제 정비의 중요성도 커진다.
미국·중국·EU의 AI 전략 분기는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동시에 독자적 경로를 설계할 여지를 열어 놓고 있다. 한국 정부는 AI 칩 공급망 다변화, 국내 AI 반도체 기술력 제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AI 안전 기준 수립을 병행 추진함으로써 미중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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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기술 주권 패키지'가 단순한 보호주의가 아니라 역내 산업 역량 강화와 국제 규범 주도를 결합한 전략임을 감안할 때, 한국도 규제와 혁신을 대립 구도로 보지 않고 함께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FAQ
Q. 미국의 AI 칩 수출 통제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미국의 대중 AI 칩 수출 통제는 엔비디아 H200 등 고성능 칩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은 미국 기술 기반 제품의 대중 수출 제한에 간접적으로 노출된다. 중국이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면서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 수요 구조도 중장기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미국의 수출 통제 규정 준수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Q. 한국은 EU의 AI 규제 모델을 참고할 수 있는가.
A. EU의 AI법(AI Act)은 AI 시스템의 위험 등급을 분류하고 고위험 시스템에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어, AI 규제의 국제 기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한국도 AI 기본법 논의를 진행 중인 만큼, EU 모델의 핵심 원칙인 투명성·책임성·인간 감독 요건을 국내 산업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EU 수준의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경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어, 단계적 적용과 충분한 유예 기간 부여가 병행되어야 한다.
Q. 한국이 AI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우선해야 할 정책 과제는 무엇인가.
A. 가장 시급한 과제는 AI 학습용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셋 구축과 국내 AI 반도체 설계 역량 확충이다. 해외 클라우드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공 AI 컴퓨팅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항목이다. 아울러 AI 안전 기준을 국제 협력 틀 안에서 선제적으로 제안함으로써, 기술 수용국이 아닌 규범 형성국으로 위상을 전환하는 외교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