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피어난 예술의 향기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도심의 소란을 뒤로하고 굽이진 길을 따라 들어서면 고즈넉한 자연의 품속에 나직이 자리 잡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호남 화단의 거목 노의웅 화백(전 호남대학교 예술대학장)이 평생의 역작과 예술혼을 집대성하여 설립한 ‘노의웅 미술관’이다.
이곳은 팔순을 넘긴 노 화백이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화판 앞에 앉아, 새벽의 기운을 담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창작의 샘터’다.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만 점의 작품을 일궈온 노 화백의 손길은 여전히 형형한 빛을 발하며, 캔버스 위로 구름과 천사,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을 불러 모아 행복의 합창을 지휘한다.
미술관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치열했던 한 예술가의 생애와 마주함과 동시에, 그가 평생을 바쳐 길어 올린 맑고 순수한 위로의 세계로 초대받는다. 노의웅 미술관은 그렇게, 거장의 쉼 없는 열정이 빚어낸 ‘행복의 안식처’가 되어 이 길을 찾는 모든 이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소년 노의웅, 붓으로 세상을 그리다
노의웅 화백의 예술 여정은 한국 현대미술의 굴곡진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조선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며 화가로서의 기틀을 닦은 그는,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 자신만의 서정적 감성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미술관 1층 전시실은 노의웅이라는 거대한 숲이 시작된 발원지와 같다. 이곳에는 그가 청년 시절 품었던 고뇌의 흔적인 중·고등학교 시절 습작부터, 화업의 기틀을 닦았던 대학 시절의 치열한 탐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누렇게 빛바랜 스케치북 속에 새겨진 60여 년 전의 필선들은, 당시 청년 노의웅이 마주했던 예술에 대한 타는 듯한 갈증과 거침없는 열망을 증명하는 생생한 기록이다.
그는 “그림은 내 삶의 전부였고, 숨 쉬는 것과 같았다”고 담담히 회상한다. 이는 결코 수사가 아니다.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교육자로서의 헌신적인 삶 속에서도, 그는 단 한순간도 창작자라는 본분을 망각하지 않았다. 낮에는 제자들의 앞길을 밝히는 스승으로, 밤에는 고독하게 캔버스를 마주하는 수행자로 살았던 그에게 예술은 단순히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증명서이자 생존을 위한 호흡이었기 때문이다.
◆‘구름천사’와 ‘심상적 풍경’, 행복을 그리는 화가
노의웅 화백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행복’과 ‘동심’이다.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구름천사’ 시리즈는 그의 작품 세계가 도달한 평화의 정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캔버스라는 무한한 공간 속,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과 그 사이를 노니는 천진난만한 천사들의 군무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잊고 지냈던 영혼의 순수함을 일깨우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노 화백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를 ‘마음’이라는 필터로 정화하여 투영한다. 이는 단순한 사생을 넘어선 ‘심상적 풍경’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고향의 정겨운 초가집, 완만한 산등성이, 이름 없는 들꽃들은 화백 특유의 따뜻한 색채와 절제된 선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향수의 상징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금강산의 웅장함을 원색의 강렬함과 화려한 조형미로 풀어낸 ‘금강산의 향연’과 같은 대작은 압권이다. 이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물아일체의 찬미가 극대화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붓끝에서 자연은 차가운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따스하게 품어주는 거대한 생명의 잔치로 화한다.
◆사재로 일군 예술의 전당, 노의웅 미술관
2017년 개관한 노의웅 미술관은 공공기관의 지원이 아닌, 개인이 평생 모은 작품과 사재를 털어 세운 사립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는 자신의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를 이루어 후대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화업의 책임감에서 비롯됐다.
미술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그리고 화백이 직접 작업에 몰두하는 아뜰리에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운이 좋으면 작업복 차림으로 캔버스 앞에 서 있는 화백을 직접 대면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술관 외벽과 주변 담벼락에 만국기와 동화적 요소들을 그려 넣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는 예술이 미술관이라는 문턱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멈추지 않는 열정, 1만 점을 향한 도전
여든의 나이를 넘긴 노의웅 화백은 지금도 매일 새벽 붓을 든다. 그의 목표는 살아있는 동안 1만 점의 작품을 완성하여 세상에 남기는 것이다. 미술관에 수천 점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지만, 그는 여전히 “아직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눈을 뜨면 마주하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겐 여전히 새로운 설렘”이라고 말한다.
노 화백의 최근 작업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형태는 더욱 단순해지고 색채는 더욱 명료해졌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만을 남기려는 거장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민담이나 전설 속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가 왜 여전히 현역 작가로서 존경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상을 제시하다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과 순수함이 있고,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예술이다. 지적인 노동자나 비즈니스맨, 작가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육체적 피로를 풀어주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은 예술을 꿈꾼다”
앙리 마티스가 소망했던 이 안식의 미학은 노의웅 화백의 캔버스 위에서 한국적 정서와 동화적 상상력을 입고 찬란하게 피어난다.
광주 양과동에 자리한 노의웅 미술관은 작가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행복의 정원’이자, 각박한 세상 속에서 굳어버린 우리의 동심을 말랑하게 되살려놓는 ‘치유의 성소’다.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붓을 든 그의 고집스러운 열정은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기교가 아닌 진심에 있음을 묵묵히 증명한다.
그의 화폭 속에서 구름은 따스한 선율이 되어 흐르고, 천사는 소박한 이웃의 얼굴로 우리에게 미소 짓는다. 이 천진난만한 형상들은 현대 예술이 잊고 있었던 ‘순수’라는 강력한 힘을 일깨우며, 지친 이들이 돌아갈 마음의 고향과 행복의 원형을 보여준다. 노의웅 화백이 60년 붓질 끝에 도달한 종착지는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던 ‘동심’이라는 낙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