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속 복지국가의 새로운 길

돌봄 경제, 복지 정책의 새로운 축으로

다양한 복지국가 모델의 필요성

한국 복지의 미래를 위한 제언

돌봄 경제, 복지 정책의 새로운 축으로

 

사람들은 종종 복지국가라는 개념을 듣고 나면 전형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일자리 보장, 의료 서비스 지원, 안락한 주거환경 제공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복지국가의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요? 2026년 4월 21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AISSR(Amsterdam Institute for Social Science Research)에서 열린 존 클라크(John Clarke) 교수의 강연에서는 복지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조명하는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미래 복지국가 구상(Imagining Welfare State Futures)'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은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클라크 교수는 복지국가를 '다중적이고 논쟁적인 상상력의 불균등하고 불안정한 제도화'로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획일적인 복지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복지가 다르게 이해되고 제도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관점이 복지국가 연구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환원주의적 객관주의와 경험주의에 대한 필요한 해독제라고 설명했습니다. 환원주의적 접근은 복지국가를 단순히 경제적 지표나 정책 프로그램의 집합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클라크 교수는 이것이 복지국가의 문화적, 정치적, 상상적 차원을 간과한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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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지배적, 잔존적, 부상하는 문화 형태'라는 개념을 역사 분석의 틀로 적용해, 과거의 복지 모델, 현재의 구조적 키워드, 그리고 미래의 혁신적 시도를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복지국가에 대한 잔존적인 애착과 신자유주의적 재창조의 노력은 현재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상호주의(mutualism), 수리 및 배상(repair and reparation), 그리고 다양한 규모와 장소에서의 돌봄 명령에 대한 관심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수리 및 배상 개념은 특히 주목할 만한데, 이는 단순히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사회적 불평등과 역사적 부정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을 복지국가의 역할로 확장하자는 제안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클라크 교수가 강조한 돌봄 경제(care economy)의 중요성입니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 자체를 재정의하자는 데 있습니다.

 

세계화, 기후 변화, 기술 발전, 인구통계학적 변화라는 네 가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오늘날, 복지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은 경제적 효율성만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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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인구통계학적 변화란 단순히 고령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율 급감, 이민 패턴의 변화, 세대 간 인구 구조의 불균형 등 인구 전반의 역동적인 변화를 포괄합니다. 오히려 사회적 유대와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복지국가 모델의 필요성

 

돌봄 경제는 이 방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족 내 돌봄, 공동체 내 연대, 보건 및 간호 산업은 단순히 생산을 넘어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결속을 중심에 놓습니다.

 

클라크 교수는 돌봄 경제가 전통적인 생산 중심 경제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돌봄 노동은 측정 가능한 생산성이나 효율성보다는 관계의 질, 인간의 존엄성, 장기적인 사회적 웰빙을 우선시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기후 위기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데,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라 돌봄과 연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 구조의 재편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클라크 교수는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기존의 복지국가는 많은 경우 소득 보전, 의료 보장 등 단일한 모델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국가가 처한 사회적·문화적 조건은 천차만별입니다. 기후 변화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서는 환경 복지 모델이, 노동 인구가 급감하는 국가에서는 일자리 보장과 함께 이민자 통합 정책이 보다 강조되는 모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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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교수는 '다양한 복지국가들(Welfare State Futures)'이란 개념을 주장하며, 단일하고 정적인 복지국가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복지국가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논의 속에서 탄생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복지국가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설계하고 시민이 수동적으로 수혜받는 구조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복지의 형태를 상상하고 그 실현에 참여하는 민주적 프로젝트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복지국가의 이상적인 모델을 상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견해입니다.

 

특히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복지 정책의 확대가 곧바로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원 마련 방안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돌봄 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데, 이는 결국 국민 세부담 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일부 정책 입안자들은 복지 확대가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클라크 교수는 강연에서 이러한 반론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방어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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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복지와 경제 성장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돌봄 경제와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안정성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돌봄 경제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크고, 사회적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며, 인적 자본의 질을 향상시켜 장기적인 경제 생산성에 기여합니다. 또한, 복지국가 모델을 단순히 비용 문제로만 평가하기보다,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이며, 그 수익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로만 측정될 수 없는 사회적 웰빙, 평등, 지속 가능성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국 복지의 미래를 위한 제언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는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남길까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동시에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인구통계학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거의 매년 '복지 정책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돌봄 경제의 중요성이 급격히 부상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돌봄 노동자들의 필수적인 역할이 부각되었고, 가족 돌봄의 부담이 특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 정책이 단순히 취약 계층을 돕는 차원을 넘어, 그로 인해 공동체적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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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돌봄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대 강화는 단기적 미봉책이 아닌 장기적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가 직면한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사회적 양극화라는 도전 과제들은 클라크 교수가 제시한 '다양한 복지국가들'의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만의 고유한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복지 모델을 상상하고 구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복지국가를 꿈꾸고 있습니까?

 

새로운 모델을 상상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지국가는 정체된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과 선택에 따라 진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시스템입니다. 클라크 교수의 강연이 제시한 것처럼, 복지국가는 단순히 정책과 제도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의 표현입니다.

 

이제는 그 변화의 중심에 인간적인 가치를 두고, 우리 사회에도 적합한 형태의 복지를 그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수리와 배상, 돌봄과 연대, 지속 가능성과 평등이라는 가치들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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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4.25 14:35 수정 2026.04.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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