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세 시장에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이 매매되면서 예상치 못한 퇴거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는 21일 “임차인이 갱신요구권을 행사한 이후 주택이 매매되는 경우, 새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분쟁이 명도소송의 핵심 쟁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혼선의 중심에는 2020년 7월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다. 개정법은 임차인에게 1회에 한해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면서도,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이를 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인 예외가 ‘임대인 또는 직계가족의 실거주’다.
문제는 이 ‘임대인’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점이었다. 특히 갱신요구 이후 주택을 매수한 사람이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법원 판단이 엇갈렸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건 대법원 2021다266631 판결이다. 대법원은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했더라도 임대인은 법이 정한 기간 내라면 실거주를 이유로 이를 거절할 수 있다”며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매수인 역시 같은 요건 아래 갱신거절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집을 새로 산 매수인에게도 실거주 권리를 인정한 셈이다.
사건을 보면 흐름이 선명하다. 임차인은 기존 집주인과 계약을 맺고 거주하던 중 계약 만기를 앞두고 갱신요구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그 사이 집이 매매됐고, 새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절했다. 1심과 2심 판단은 엇갈렸지만, 대법원은 매수인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이 판결 이후 현장 분위기는 달라졌다. 임차인은 갱신요구권만으로 거주를 계속 보장받는다고 보기 어려워졌고, 매수인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실거주를 앞세워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갱신요구권 도입 이후 가장 영향력이 큰 판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매수인의 손을 무조건 들어준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22다279795 판결은 한 발 더 나아가 실거주 주장에 대한 입증 책임이 임대인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단순히 “들어가 살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 거주 의사가 객관적으로 확인돼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명도소송의 승패는 디테일에서 갈린다. 매매 시점이 임대차 종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 사이의 ‘갱신거절 가능 기간’에 포함되는지, 실거주 의사를 뒷받침할 구체적 자료가 있는지가 핵심 변수다. 매수인은 매매계약서와 등기 시점, 이사 준비 정황 등 증거를 촘촘히 갖춰야 하고, 임차인은 실거주가 형식적 주장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엄정숙 변호사는 “같은 유형의 사건이라도 사실관계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초기 대응에서 전략을 잘못 잡으면 뒤집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임차인과 매수인 모두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법적 기준과 증거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감지된다. 매수인들은 계약 단계에서 실거주 계획을 명확히 세우고, 임차인 역시 갱신요구권 행사 이후에도 추가 변수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갱신요구권=2년 보장’이라는 단순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셈이다.
이번 판례는 임차인 보호 중심으로 설계됐던 임대차 시장에 새로운 균형점을 던졌다는 평가다. 권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권리가 언제든 조건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시장의 룰은 더 정교해졌고, 분쟁은 더 치밀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