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박사는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국회의정연수원 강사,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강사로 활동해 왔으며,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 역량강화 교육을 200회 이상 진행하였다. 또한 서울시교육청 청렴시민감사관, 서울특별시 주민참여연구위원, 경기도 주민참여예산연구회 연구위원, 경기도 주민참여예산위원(기획행정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주민참여예산 제도의 현장성과 제도성을 함께 연구해 왔다.
교육재정은 더 이상 교육청 내부의 기술적 문서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예산은 숫자로 작성되지만, 교육예산은 결국 아이들의 일상과 학교의 환경, 지역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공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교실의 냉난방과 화장실, 급식과 돌봄, 안전과 마음건강, 진로체험과 미래역량 교육은 모두 예산을 통해 현실이 된다. 이런 점에서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단순한 참여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육재정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고 보아야 한다.
시민참여예산의 본질은 예산 편성과정에 시민이 참여하여 필요한 사업의 우선순위를 함께 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교육청의 시민참여예산은 일반 지방자치단체의 참여예산과는 또 다른 무게를 가진다. 지방자치단체의 참여예산이 도로, 공원, 골목길, 생활불편, 교통안전 같은 생활 인프라에 많이 닿아 있다면,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교육환경, 학생 복지, 정서 회복, 안전, 진로체험, 디지털 문해력과 같은 보다 교육 본질에 가까운 영역을 다룬다. 결국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무엇을 고칠 것인가”를 넘어 “어떤 교육을 만들 것인가”를 시민과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다.
필자가 주민참여예산 관련 위원회 활동과 현장 강의를 하면서 거듭 확인한 것은, 교육예산은 행정만의 판단으로는 충분히 살아 움직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과 시민 모두가 교육의 이해당사자이다. 예산이 이들의 요구와 경험을 충분히 담지 못하면, 아무리 회계상으로 정교해도 살아 있는 공교육 재정이 되기 어렵다. 시민참여예산은 바로 그 간극을 메운다. 행정의 판단에 시민의 생활감각과 현장경험을 더함으로써 예산의 정당성과 설득력을 함께 높이는 것이다.
이 제도의 중요한 가치는 민주성에만 있지 않다. 투명성과 신뢰의 문제도 함께 담고 있다. 예산은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투명한 것이 아니다. 시민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사전 공고, 의견 수렴, 심사, 결과 공개라는 과정을 통하여 시민이 예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단지 절차를 정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과정이다. 교육행정이 신뢰를 얻으려면, 학교와 교육청의 예산이 누구를 위해, 어떤 원리로, 어떻게 결정되는지 시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공동체성이다.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특정 학교나 개인의 사적 요구를 해결하는 민원창구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시민이 함께 교육의 우선순위를 논의하는 공공의 장이다. 그래서 좋은 제안은 늘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다수 학생과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교육청의 권한 안에서 실행 가능해야 하며, 기존 사업과 중복되지 않아야 하고, 예산 규모도 적정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시민의 참여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안을 실제 공공정책으로 정제하기 위한 공공성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의 흐름을 보면 몇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분명하다.
첫째, 관심의 초점이 단순 시설개선에만 머물지 않는다. 물론 노후 화장실과 창호 개선, 냉난방 보강, 학교 환경개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시민의 관심은 정서 회복, 마음건강, 디지털 역량, 진로체험, 생태·환경교육,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같은 보다 복합적인 교육수요로 넓어지고 있다. 이는 교육에 대한 시민의 시선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콘텐츠와 시스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이 공교육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교육격차 완화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취약계층 학생 지원, 방과후 프로그램, 마음건강 지원, 생활안전 강화, 돌봄 체계 보완은 모두 예산이 있어야 가능한 정책들이다. 시민참여예산이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때, 이 제도는 단순한 참여민주주의를 넘어 교육의 형평성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예산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느 분야에 더 많이 배정하는가에 따라 공교육의 철학이 달라진다. 시민참여예산은 바로 그 가치 선택에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 준다.
셋째,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미래형 교육수요를 드러내는 창구가 되고 있다. 오늘의 교육은 교과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의 문해력, 정서 회복, 관계와 공감, 금융 이해력, 지역사회 연결, 생태감수성 등이 함께 요구된다. 필자가 여러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참여예산을 다루며 느낀 것은, 행정은 제도와 규정 때문에 때로는 느리지만 시민은 생활 속에서 새로운 필요를 더 먼저 감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민참여예산은 공교육이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예민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물론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참여와 전문성의 균형이 중요하다. 모든 시민 제안이 곧바로 예산사업이 될 수는 없다. 법령상 가능한 범위인지, 교육청 예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인지, 기존 사업과 중복되지는 않는지, 효과와 지속가능성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지나치게 큰 예산을 요구하거나, 특정 학교나 소수 집단에만 한정된 사업, 권한 밖의 제안, 추상적 구호 수준의 사업은 선정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심사기준은 참여를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안을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한 공공성의 필터이다. 오히려 좋은 기준이 있을수록 시민참여예산은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시민참여예산은 한 번의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예산학교, 제안사업 공모, 위원회 심사, 예산 반영, 결과 공개, 사후 평가가 하나의 사이클로 정착되어야 한다. 시민은 참여하면서 배우고, 교육청은 시민의 요구를 더 정교하게 읽게 되며, 학교는 제안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그런 과정이 쌓여야 시민참여예산은 교육공동체를 키우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교육청 시민참여예산은 예산을 나누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공교육을 누구의 손으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행정이 독점적으로 정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교육으로 나아갈 때 공교육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교육재정의 민주주의는 교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가 살아날 때, 시민참여예산은 단순한 제도를 넘어 공교육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구체적인 길이 될 것이다.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경북도교육청,울산시교육시교육청,광주시교육청 등과 지방자치단체에서 200회 주민참여예산 강의 실시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상임이사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