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강의 문화 노마드] 적산가옥

잊지 말아야 할 어떤 감각을 조용히 일깨워

 

[서문강의 문화 노마드] 적산가옥

 

안녕하세요, 서문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경험은 자연스럽게 문화가 됩니다. 사소한 것부터 특별한 것까지, 그 이야기를 따라 여러분과 함께 떠나보려 합니다. 이 여정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냈던 세계를 다시 만나는 길입니다. 자, 함께 가볼까요. Let’s go. 

 

오늘은 ‘적의 재산’으로 불리는 적산가옥을 만나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 지은 일본식 주택을 말하는 적산가옥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습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시간의 결이 유난히 오래 머문 집을 만나게 됩니다. 기와는 낮게 내려앉고, 처마는 낯선 각도로 길게 뻗어 있으며, 창문 너머에는 다른 시대의 공기가 스며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집을 적산가옥이라 부릅니다.

 

이 이름에는 역사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적산’은 말 그대로 ‘적의 재산’이라는 뜻입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인이 지어 살던 집들이 해방 이후 남겨지며 붙은 이름이지요. 주인이 떠난 자리에는 낯선 침묵이 남았고, 그 공간은 곧 우리의 시간이 스며드는 또 다른 삶의 그릇이 되었습니다.

 

적산가옥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식민의 기억과 해방의 공기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일본식 다다미방 구조, 미닫이문, 낮은 천장과 깊은 처마는 분명 이국의 것이지만, 그 위에 얹힌 시간은 한국의 것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집에서 다시 아이를 키웠고, 누군가는 상점을 열었으며, 또 누군가는 그저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집들은 늘 묻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남겨야 할 것과 지워야 할 것은 어디까지인지 말입니다. 낡은 벽 하나를 두고도 우리는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볼 것인가, 아픔으로 볼 것인가 그 경계는 여전히 흐릿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적산가옥은 또 다른 얼굴을 갖게 되었습니다.

 

카페가 되고, 전시 공간이 되고, 여행자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흔적 위에 현재의 감각이 덧입혀지며, 이 집들은 더 이상 멈춰 있는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로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 안에는 여전히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벽지 아래 겹겹이 쌓인 시간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기억들. 적산가옥은 우리에게 편안한 쉼을 주면서도,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어떤 감각을 조용히 일깨웁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적산가옥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서울 용산구 청파동과 원효로, 용문동 일대에 전통적인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카페나 창고 주택 식당 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군산 신흥동 일대도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지요. 

 

군산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만큼, 가장 많은 적산가옥이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시 일본인 대지주의 저택으로,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처럼 여겨집니다. 

 

부산 초량에는 일본식 가옥 거리도 있습니다. 부산 초량 일대에 바다를 향해 열린 골목과 계단 사이에 자리한 집들은, 식민지의 기억과 항구 도시의 숨결이 겹쳐진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이곳의 적산가옥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와 공존하는 시간의 층위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일대에도 일본식 가옥이 있습니다. 목포 역시 개항 이후 일본인들의 거주지로 형성된 도시입니다. 근대역사관 주변에 남아 있는 적산가옥들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박물관처럼 느끼게 합니다. 걷다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이야기가 되고, 골목 자체가 한 편의 서사가 됩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지 묻는 장소들입니다. 그 오래된 공간은 오늘도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문강의 문화 노마드]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2026.04.09 09:30 수정 2026.04.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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