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즘을 바로 알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고 하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가 지은 군주론(君主論, The Prince에 의하면 정치는 일체의 도덕과 종교에서 독립된 것이므로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도덕과 종교에 반()하더라도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의 반() 도덕성 및 반() 종교성은 정당화된다고 한다. ,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마키아벨리스트(Machiavellist: 권모술수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미지: AI image.antnews 제공>

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에서 군주는 권력을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해 여우와 같은 간사한 책략과 사자와 같은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신의가 두텁고 종교심도 많으며 인격도 고결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로마사론에서 국가창건이라는 결과를 실현하기 위한 비상수단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고대 로마인들이 가졌던 무력 우선적 사고방식을 소생시키고, 이탈리아에 새로운 정치질서와 사회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전통적인 도덕이나 종교를 타파하고 그에 구속되지 않는 강력한 지배자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참뜻이 이해되지 않고 도덕과 종교의 부정이라는 한 쪽 면만 강조됨으로서 그의 사상은 송두리째 비난을 받았다. 로마 교황청은 1559년 그의 저서 전부를 금서목록에 넣었고, 프랑스의 신교도는 생바르텔미(Saint-Barthélemy)의 학살이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을 실행한 것이라 하여 그를 규탄하였다. 또 프로이센의 대왕 프리드리히 2세는 자기 자신이 실제로는 반도덕적 정치를 자행하고 있으면서도 1740()마키아벨리론을 썼는데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정치가에게 악덕을 권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치가는 도덕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일방적인 비난을 통하여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란 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마키아벨리즘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모든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는 마키아벨리즘의 실천으로 매도되었고, 마키아벨리 자신이 마치 무슨 음모가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찬란한 문화를 뽐내던 조국 피렌체가 침략자들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치욕을 지켜보았고,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Savonarola)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 덧없이 몰락하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어떤 불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한 남성적 힘(vir)만이 그런 치욕을 되갚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힘(vir)은 덕()을 의미하는 비르투(virtu)로 연결된다. 덕을 길러 남보다 우수한 비르투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개인이든 국가든 더 우수한 덕을 소유할 때만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에서 군주로서 성공하려면 먼저 좋은 법과 좋은 군대를 갖추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정치, 행정, 외교 등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기독교적인 미덕은 잠시 잊어버리고 고대 영웅들의 비르투(virtu)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대의 영웅들은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잔혹한 살육도 저질렀다. 하지만 국가 간의 중요한 이익을 놓고 협상할 때 정직함에만 얽매여 자국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는가? 살인하지 말라는 규범은 십계명에도 적혀 있는 기본적 도덕률이지만 그런 규범을 지키기 위해 야심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무리를 살육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와 전 국민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기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 것만을 겁내서 조치를 취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지라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도덕 따위는 의미가 없다는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이 아니라 더 큰 도덕을 위해 작은 악덕을 행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대의(大義)를 위해 소의(小義)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키아벨리가 꿰뚫어 본 정치의 본질이었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 정치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책임은 결과적 책임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은 바로 그런 결과적 책임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마치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 수술이라는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나쁜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런 마키아벨리즘을 바로 알자.

 

 

-손 영일 컬럼 



작성 2026.04.09 07:19 수정 2026.04.09 07:19

RSS피드 기사제공처 : 개미신문 / 등록기자: 김태봉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