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주택 레포'로 비춰진 독특한 금융 구조
한국의 전세 제도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원과 구조적 의미를 되짚을 기회는 드물었다. 그러나 2026년 4월 8일 연합인포맥스 보도에 따르면, 신현송 한국은행 차기 총재 후보자가 과거 발표했던 학술 연구가 화제가 되며 전세라는 독특한 주거 형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신 후보자는 2013년 김세직 서울대 교수와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Financing Growth without Banks: Korean Housing Repo Contract(은행 없는 성장 자금 조달: 한국 주택 레포 계약)'에서 전세를 '주택 레포(housing repo) 계약'으로 규정하며, 한국 전세의 본질과 그 경제적 함의를 학문적으로 조명했다.
이러한 관점은 단순히 주거 형태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금융 환경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작용한다. 전세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1960~70년대 한국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주택 공급 부족과 금융 시스템의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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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교수와 김세직 교수의 논문은 이 시기를 전세 제도 탄생의 결정적 배경으로 분석한다. 당시 연 30%에 달했던 정기예금 금리는 은행 금융 접근성이 낮은 다수 서민들에게 전세라는 대안적 금융 계약을 가능하게 했다.
집주인은 전세 보증금을 예금으로 운용해 월세보다 높은 수익을 얻으며, 세입자는 매달 임대료를 낼 부담 없이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논문은 이를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의 일종으로 평가하며, 공식 금융 시스템 밖에서 자금이 유통되는 독특한 형태였다고 설명한다. 특히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 호혜적 계약으로, 당시 한국의 금융 환경과 서민 경제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목돈을 사업 자금으로 활용하는 일종의 사적 금융 형태로 작동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전세 제도는 1970~80년대 고금리 환경 덕분에 그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예금 금리가 연 20%를 유지하며 주택 소유자는 전세 보증금을 통해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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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제도는 단순히 주거 문제 해결을 넘어, 서민들의 자산 형성과 경제적 자립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전세는 한국 임대차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주거 계약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고금리와 고성장, 그리고 은행 금융의 부재라는 세 가지 시대적 조건의 산물이었다. 논문은 이러한 조건들이 전세 제도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전세 대출 급증과 제도의 변화
2000년대 이후 금리가 급격히 하락하며 전세 제도의 경제적 동력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기준금리가 1~2%대로 떨어지자 과거와 달리 집주인들에게 전세 보증금 운용의 매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연 30%에 달했던 1960년대와 연 20%를 유지했던 1970~80년대의 고금리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저금리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 수요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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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전세 대출 잔액은 2016년 36조 원에서 2022년 170조 원으로 약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러한 변화는 전세가 과거처럼 '저축으로 모은 목돈'이 아닌, '은행 대출로 빌린 목돈'으로 재편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세입자들이 은행 전세 대출로 보증금을 충당하기 시작하면서 전세의 성격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전세가 점점 더 금융 시장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며, 결국 전세라는 개념의 본질적 변화를 초래했다. 신 후보자의 논문은 전세가 한국 사회의 고유한 금융 계약임을 강조하며, 전세 제도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과는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지적한다. 논문은 전세를 은행 시스템을 우회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독특한 한국적 금융 계약이라는 점을 학술적으로 분석하여 큰 의미를 가진다.
그의 연구는 전세를 단순히 주거 계약 이상의 경제적 계약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사업 자금으로 활용했던 과거 전세와 달리, 현대의 전세는 대출을 통해 조달된 보증금을 활용하는 구조로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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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세 대출의 급증은 자칫 금융 시스템의 안전성에 위협을 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전세 대출이 134조 원 증가했다는 사실은 전세 시장이 금융 시장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금리가 다시 오를 경우 대출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나, 전세 계약자들이 연쇄적인 금융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물론 전세 제도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장기간 안정된 거주를 보장하는 전세는 많은 이들에게 안정성과 연속성을 제공한다. 이에 대해 일부 경제학자들은 전세가 주택 소유권으로의 전환을 위한 중간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를 통해 목돈을 마련하고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주택 구매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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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전세 대출 증가와 집값 상승이 전세 제도를 서민들에게 점점 더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전세가 '저축으로 마련하는 목돈'에서 '은행에서 빌리는 목돈'으로 성격이 변화했다는 점은 전세 제도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향후 전세 제도가 생존 가능한 모델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금융 정책과 적극적인 시장 조정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경제와 정책에 미칠 영향
전세 제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다양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추이에 따라 전세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금리가 안정화될 경우 전세는 다시 매력적인 주거 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과 금리 변동성이 커질 경우 전세 대출자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특히 2016년 36조 원에서 2022년 170조 원으로 급증한 전세 대출 잔액은 금리 변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와 금융 당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세 제도의 긍정적 측면을 살려낼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신현송 후보자가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할 경우, 그의 전세 제도에 대한 학술적 이해가 향후 부동산 및 금융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전세 제도는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금융과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맞물려 진화해 온 독특한 계약 구조로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 고금리와 은행 금융 부재 시기에 탄생한 전세는 1970~80년대 전성기를 거쳐, 2010년대 이후 저금리 환경에서 대출 기반 구조로 완전히 변모했다.
신현송 교수와 김세직 교수의 2013년 논문은 전세를 '주택 레포 계약'이라는 학술적 프레임으로 분석하며, 한국 고유의 그림자 금융 시스템으로서 전세의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현대의 경제적 요구와 맞아떨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세 대출 잔액이 6년간 5배 가까이 급증한 현실은 전세 제도가 과거의 안정적 금융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향후 전세 시장의 변화와 정부 정책의 방향, 그리고 신현송 후보자의 한국은행 총재 취임 후 정책 기조가 전세 제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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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news.einfomax.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