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대한민국은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찬사와 함께 숨 가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상을 파고들며 효율성은 극대화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 대신 짙은 피로감이 드리워져 있다.
고물가와 저성장의 늪, 그리고 나날이 치열해지는 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을사년(2025)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시공간을 초월한 두 가지 역사적 장면을 소환해 본다. 차가운 이성과 효율을 강요했던 19세기 유럽의 광장과, 따스한 연민과 공존이 살아 숨 쉬던 20세기 한국의 들판이다.

채찍질 당하는 사회, 우리는 모두 '토리노의 말'이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광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현대 사회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고편과도 같았다. 무거운 짐을 끄는 늙은 말이 빙판길에 쓰러졌을 때, 마부는 말의 상태를 살피기보다 거친 채찍을 휘둘렀다. 그에게 말의 멈춤은 곧 손실이었고, 배송의 지연은 생계의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더 빨리, 더 힘껏!" 마부의 고함은 오늘날 성과 지표(KPI)에 쫓기는 현대인들을 향한 사회의 압박과 묘하게 겹쳐진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의 목을 끌어안고 오열하며 정신을 놓았다. 니체가 흘린 눈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생명과 존엄이 짓밟히는 야만에 대한 절규였다. 2026년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 낙오자를 패배자로 낙인찍는 차가운 시선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채찍을 휘두르고 있지는 않은가? '노력'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옥죄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토리노의 말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한국형 휴머니즘의 원형, 짐을 나눠지는 '농부의 마음'
반면, 1960년 한국을 방문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펄 벅 여사가 마주한 풍경은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늦가을 경주 안강역 인근 들판, 볏단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 옆에서 농부는 소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편안하게 달구지에 올라탈 수도 있었지만, 농부는 자신의 지게에도 짐을 나눠지고 소의 발걸음에 맞춰 걷기를 택했다.
"왜 타지 않느냐"는 이방인의 물음에 농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저 말 못 하는 짐승도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나까지 짐을 보탤 수야 없지 않소." 이 장면은 단순한 배려를 넘어선 '생명에 대한 예의'였다. 소를 도구가 아닌, 생계를 함께 꾸려가는 동반자로 인식하는 상생(相生)의 정신. 펄 벅은 이를 두고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자 인류가 회복해야 할 존엄성"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농부의 행동은 미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미련함' 속에야말로 차가운 기계 문명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의 정수가 담겨 있다.

2026년의 생존법, 속도전에서 벗어나 공감의 연대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대,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공감'이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경로를 제시할 수 있지만, 지친 동료의 짐을 대신 짊어지거나 넘어진 이웃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과 시민의식은 채찍을 든 마부의 냉철함이 아니라, 짐을 나누는 농부의 따뜻함이다.
경쟁에 지쳐 번아웃을 호소하는 청년들, 고립감에 시달리는 노년층, 실패의 두려움에 웅크린 소상공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달려라"는 독촉이 아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무거우면 같이 들자"는 위로의 연대다. 이는 단순한 감상주의가 아니다. 사회적 신뢰 비용을 낮추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해법이다.
새해에는 속도계의 눈금을 잠시 잊자. 대신 내 옆 사람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자. 내가 조금 더 힘들더라도 기꺼이 짐을 나누어 메는 용기, 그것이 마부의 채찍을 멈추게 하고 토리노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년,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아니라, 1960년 가을 들판에 불던 그 따뜻한 '상생의 바람'이다.
2026년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정신적 성숙이 동반되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짐을 나누어 지는 '농부의 마음'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자 구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