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비극은 전 세계 경제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수많은 서방 글로벌 기업들이 가치 사슬의 붕괴와 도덕적 비난, 그리고 경제 제재의 압박 속에서 러시아 시장을 등졌다. 그러나 한국의 초코파이는 러시아 국민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리온과 롯데웰푸드가 보여주는 유례없는 성장세는 단순한 매출 증대를 넘어,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인내와 현지화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오리온 러시아 법인의 연 매출 3,000억 원 돌파 전망과 117%에 달하는 공장 가동률은 경이로운 수치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수많은 기업이 철수를 선택할 때, 한국 기업들은 현지 생산 기반을 유지하며 공급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비자들에게 어려울 때 곁을 지키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이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정서적 유대감으로 발전하며,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공의 또 다른 축은 철저한 현지화에 있다. 오리온은 러시아인들이 차(茶)와 함께 잼을 즐기는 식문화를 간파하여 베리류 잼을 넣은 초코파이를 내놓았고, 롯데웰푸드 역시 다양한 맛의 포트폴리오로 소비자 선택권을 넓혔다. 이는 한국의 맛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제품을 재해석한 결과다.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과 심리적 불안 속에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을 제공한 전략은 시의적절했다.

여기에 전 세계를 휩쓴 한류라는 강력한 소프트파워가 뒷받침되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하상도 중앙대 교수의 분석처럼,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K-푸드의 인지도와 현지 생산 체계는 외부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생력을 갖추게 한 원동력이다.
러시아 시장에서 오리온과 롯데웰푸드가 거둔 기록적 성과는 전쟁 리스크를 ‘신뢰’와 ‘현지화’로 정면 돌파한 결과다. 서방 기업의 이탈로 생긴 공백을 현지 맞춤형 제품과 한류의 긍정적 이미지로 채우며, K-푸드는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러시아 시장의 필수 생필품이자 신뢰의 아이콘으로 안착하였다. 이는 위기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유의미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