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사학은 언제부터 정답이 되었는가

실증이라는 이름의 탄생

실증사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실증의 한계와 침묵된 질문들

 

 

 

 

 

언제부터인가 역사 논쟁의 끝에는 늘 같은 말이 붙는다.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이 문장은 논쟁을 정리하는 최종 판결처럼 작동한다. 질문은 사라지고, 결론만 남는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증사학은 언제부터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정답’이 되었는가. 과학은 질문을 통해 진화한다. 그런데 역사학에서 실증은 질문을 닫는 도구로 쓰일 때가 많다. 실증이 없는 해석은 배제되고, 실증이 어려운 주제는 연구 대상에서 밀려난다. 그 순간, 방법론은 학문을 지키는 기준이 아니라 학문을 제한하는 규칙이 된다.

 

실증사학은 근대 학문 체계 속에서 등장했다. 19세기 유럽에서 역사학은 문학과 철학에서 분리돼 ‘과학’이 되길 요구받았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레오폴트 폰 랑케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보여주라”는 원칙을 내세웠고, 1차 사료 중심의 연구를 역사학의 기준으로 만들었다. 이 방법론은 큰 성과를 냈다. 전설과 신화를 걷어내고, 국가와 제도의 실제 작동을 밝혀냈다. 문제는 이 방법이 유일한 길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실증사학은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게 된다. 감정적 민족서사와 선을 긋는 것이 학문의 생존 전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선택은 곧 규범이 되었고, 규범은 정답이 되었다.

 

실증사학은 흔히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해진다. 사료를 말하게 할 뿐, 해석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료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해석은 개입된다. 어떤 기록을 신뢰할 것인가, 어떤 기록을 배제할 것인가. 이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실증사학은 문헌 중심의 역사에 강하다. 반면 문자 기록이 적거나, 기록 자체가 지워진 집단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린다. 고대사, 민중사, 기억의 역사들이 늘 ‘불충분한 자료’라는 이유로 축소돼 온 이유다. 해외 역사학계는 이미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사, 구술사, 문화사, 미시사로 확장해 왔다. 실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실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을 인정한 결과다.


학문에서 가장 역설적인 순간은 증거가 부족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증거가 등장했을 때다. 새로운 유물, 기존 통설과 어긋나는 문헌, 해석을 바꿀 수 있는 자료가 제시되는 순간, 토론은 활발해지기보다 조용해진다. 질문은 줄어들고, 논문 심사는 까다로워진다. “아직 이르다”, “결정적이지 않다”, “학계 합의와 다르다”는 말이 반복된다. 이때 증거는 환영받지 못한다. 불편해진다. 문제는 증거의 질이 아니라, 그 증거가 요구하는 변화다. 증거는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고, 기존 질서를 흔든다. 학문이 증거 앞에서 불편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원래 증거는 학문의 연료였다. 기존 설명을 보완하고, 틀렸다면 고쳐 나가는 과정이 학문의 정상적인 진화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학문은 점점 제도화됐다. 학과, 학회, 학술지, 연구비 구조 속에서 통설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안정성’이 되었다. 역사학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국가 정체성, 기원 서사와 맞닿은 영역에서는 통설이 흔들릴 때의 파장이 크다. 한국 고대사 논쟁에서 고고학 자료나 새로운 해석이 반복적으로 ‘보류’ 상태에 머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증거가 틀려서가 아니라, 받아들일 경우 발생할 연쇄 변화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불편한 증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기존 연표나 중심 서사를 수정하게 만든다. 둘째, 교과서와 교육 체계에 영향을 준다. 셋째, 학계 내부의 위계를 흔든다. 이런 증거들은 대개 “부분적이다”, “맥락이 불명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신중함은 필요하다. 그러나 같은 기준이 통설을 강화하는 증거에도 적용되는지는 의문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반복돼 왔다. 고고학과 역사 해석의 충돌, 구술사와 문헌 중심 사학의 갈등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경험한 문제다.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증거를 어떻게 대했는가다. 토론으로 흡수했는지, 아니면 주변부로 밀어냈는지에 따라 학문의 방향은 달라졌다.


증거는 본래 불편하다. 편안한 증거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반복할 뿐이다. 학문이 살아 있다는 신호는, 새로운 증거 앞에서 논쟁이 시작되는가에 달려 있다. 불편함을 이유로 증거를 미루는 순간, 학문은 안정되지만 성장하지 않는다. 질문을 덮는 태도는 지식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고정시키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증거가 불편한가, 아니면 변화가 두려운가. 학문은 후자를 선택하는 순간, 스스로를 약화시킨다.

 

 

 

작성 2025.12.30 23:05 수정 2025.12.3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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