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눈은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것은 당신이 태어나 글을 배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우리의 뇌는 이미 '좌→우'라는 정보 처리 고속도로를 닦아 놓았고, 모든 시각 정보와 논리 구조를 이 방향에 맞춰 배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정보가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흐르는 세계에 떨어진다면 어떨까?
히브리어를 처음 접하는 순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강력한 '시각적 역주행'이다. 단순히 글자를 반대로 읽는 차원이 아니다. 이것은 뇌가 세상을 인지하는 기본 좌표축을 뒤흔드는 경험이다. 마치 평생 오른손잡이로 살아온 사람이 왼손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낯설고 불편한 '방향 전환'이 과연 우리의 굳어진 사고 회로에 어떤 균열을 내고, 그 틈새로 어떤 창의적 스파크를 일으키는지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돌에 새긴 역사, 뇌에 새긴 습관
히브리어를 비롯한 고대 셈어족 언어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이는 이유는 역사적, 물리적 환경과 관련이 깊다. 고대에는 종이가 아닌 돌이나 점토판에 글을 새겼다. 오른손잡이가 망치와 정을 들고 글자를 새길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반면, 잉크와 펜이 발명된 이후 서구 문명은 쓴 글씨가 손에 번지지 않도록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방식을 택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우연이 수천 년간 지속되면서, 현대인의 뇌 속에 강력한 신경학적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시간의 흐름, 인과 관계, 논리의 전개를 '좌에서 우로' 진행되는 선형적 구조로 인식한다. 서양의 악보, 그래프, 심지어 웹사이트의 UI 디자인까지 모두 이 규칙을 따른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우측 시작' 방식은 단순히 다른 문법 규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뇌가 수 세기 동안 강화해 온 가장 기본적인 인지 습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다.
공간 지각력과 시야의 확장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읽기 방향은 인간의 공간 지각 능력과 주의력 분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사람들은 시각적 주의가 오른쪽으로 편향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히브리어 사용자들은 시야 전체를 더 균형 있게 활용하거나 왼쪽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이 발달한다. 이는 뇌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언어 처리는 주로 좌뇌가 담당하지만, 공간 정보와 시각적 패턴 전체를 조망하는 기능은 우뇌가 우세하다.
익숙한 모국어를 읽을 때 우리 뇌는 효율적인 좌뇌 중심 모드로 작동한다. 하지만 낯선 방향인 히브리어를 읽을 때는 우뇌의 공간 지각 영역이 비상등을 켜고 활발하게 개입하기 시작한다. 문장의 시작점을 찾기 위해 시선을 오른쪽 끝으로 옮기고, 낯선 글자들의 형태를 공간적으로 분석하며,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우뇌의 직관적인 능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히브리어 읽기는 좌뇌의 논리와 우뇌의 공간 감각이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협업하게 만드는, 뇌의 새로운 연결 통로를 여는 작업이다.
불편함이 만드는 '바람직한 어려움'
그렇다면 이 시각적 반전이 어떻게 창의성으로 연결될까? 창의성은 종종 익숙한 패턴을 깨뜨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탄생한다. 히브리어의 역방향 읽기는 우리 뇌에 의도적인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를 걸어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 효과를 높이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이라고 부른다. 너무 쉽고 익숙한 과제는 뇌를 '자동 조종 모드'로 만들지만, 적당히 낯설고 어려운 과제는 뇌를 깨어있게 만든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글자를 해독하려는 노력은 뇌가 관성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강제한다. 정보가 입력되는 순서가 바뀌면, 뇌는 기존의 선형적인 인과관계 추론 방식과는 다른 대안적인 경로를 탐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사물이나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유연한 사고 능력이 배양된다. 이스라엘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기존 질서를 뒤집는 역발상에서 자주 나오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언어를 통해 훈련된 '시각적, 인지적 반전 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뇌의 자동 항법 장치를 꺼라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뇌가 가장 편안해하는 방식으로만 세상을 대해왔는지도 모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정보의 강물에 몸을 맡긴 채, 그 흐름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히브리어 공부는 이 편안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몸부림과 같다. 처음에는 시선이 꼬이고,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당신의 뇌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신경망을 건설하고 있다는 신호다.
창의성은 안락함 속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낯선 충돌과 기분 좋은 불편함 속에서 자라난다. 당신의 사고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혹은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시각을 갖고 싶다면, 가끔은 세상의 질서를 반대로 거슬러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히브리어의 낯선 흐름에 당신의 눈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 시각적 반전의 끝에서 당신은 전혀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 지금 당장 펜을 들고 자신의 이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 순서를 거꾸로 한번 써보세요(예: '홍길동' -> '동길홍'). 그리고 거울에 비추어 제대로 보이게 써보려는 시도도 해보세요. 이 사소하고 어색한 손동작이 당신의 굳어 있던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첫 번째 스트레칭이 될 것입니다.
[ 허동보 목사 ]
ㆍ現 수현교회 담임목사
ㆍ現 수현북스 대표
ㆍ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석사(M.Div)
ㆍ미국 Covenant University 신학석사(Th.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