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북부의 항구도시 하이파, 평화로운 일상의 이면에는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거대한 지하 세계가 숨어 있다. 람밤 의료 센터의 새미 오퍼 지하 요새 병원은 단순한 의료 시설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처한 지정학적 위기감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투영한 결정체이다. 이 거대한 지하 구조물은 왜 주차장의 가면을 쓴 채 땅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구조적 함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본다.
이 프로젝트의 기원은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헤즈볼라가 발사한 수천 발의 로켓은 하이파를 직격했고, 지상의 병원은 환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 참혹한 경험은 이스라엘 안보 당국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큼이나, 공격 속에서도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회복탄력성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약 1억 4천만 달러가 투입된 이 지하 요새는 바로 그 생존의 의지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시설의 핵심은 철저한 민군 겸용 하이브리드 설계에 있다. 총 20만㎡ 규모의 지하 3층 공간은 평상시 1,500대의 차량을 수용하는 주차장으로 기능하며 유지비용을 절감한다. 그러나 비상 신호가 떨어지면 이 공간은 단 36시간 안에 2,0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변모한다. 벽면 패널 뒤에 숨겨진 산소 공급 라인과 전력 포트, 그리고 화생방 공격까지 차단하는 첨단 공조 시스템은 이곳이 처음부터 병원으로 설계되었음을 증명한다.

주목할 점은 의료진의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한 사회적 설계이다. 전시 상황에서 의료진이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지하 내부에 450명의 자녀를 수용하는 유치원을 구축한 것은, 인적 자원이 안보의 핵심임을 꿰뚫어 본 통찰이다. 수술실부터 신생아실까지 지상의 모든 기능을 지하로 옮겨온 이 시설은 실제 최근의 교전 상황에서도 제왕절개 수술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그 효용성을 입증하였다.
결국 람밤의 지하 요새는 이스라엘이 선택한 ‘상시적 전시 상태’에 대한 응답이다. 땅속으로 파고든 이 거대한 병원은 현대전의 위협이 민간인의 일상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리고 국가가 생존을 위해 어떤 극단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역사적 증거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