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청소년 4000여 명이 참여한 토론연극 ‘라인’이 공연 형식의 시민성 교육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관객 참여형 연극을 통해 평화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일상적 경험으로 체득하게 했다는 평가다.
강원도 동해의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진행된 토론연극 ‘라인’ 공연 도중, 객석에 있던 학생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미 제시된 극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기 위해서였다. 관객으로서 판단하던 상황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무대는 ‘관람의 공간’에서 ‘선택의 공간’으로 전환됐다.

이 공연은 사단법인 행복공장과 연극공간-해가 공동 기획한 토론연극 ‘라인’으로, 두 단체는 지난 1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13개 지역, 13개 학교를 순회하며 총 4000여 명의 청소년을 만났고, 공연 종료 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만족도와 재참여 의사, 평화와 민주주의 가치 이해도 등 주요 항목에서 90% 이상의 긍정 응답이 집계됐다.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공연 형식을 유지한 ‘라인’은 조명과 음악, 무대 연출을 갖춘 완성도 높은 연극이지만, 관객은 수동적인 감상자에 머물지 않는다. 극 중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 공연은 잠시 멈추고 관객에게 질문이 던져지는데, 이는 ‘다른 선택은 가능했을까’라는 물음이다.

이후 관객은 ‘관객-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 오르며, 머릿속 판단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며 갈등의 결과를 직접 마주한다. 한 대전 지역 학생은 “연극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가 규칙이 아니라 태도라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어서 세종시의 한 중학교 교사는 “평소 집중력이 떨어지던 학생들이 공연 내내 몰입했다”며 “‘연극’이라는 형식이 학습 태도를 바꿨다”고 전했다.
이 같은 효과는 예술이 지닌 공감과 상상의 힘에서 비롯됐는데,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에서 ‘예술은 시민성에 필요한 상상력을 키우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 바 있다. ‘라인’의 무대에는 서로 다른 가치와 논리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며, 청소년들은 특정 인물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갈등을 경험한다.
강원 동해 지역의 한 학생은 “사회가 갈등으로 나뉘는 상황에서 이 공연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높은 갈등 인식과 민주주의 신뢰 저하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형식 역시 청소년 세대의 감각을 반영했다. 공연은 서바이벌 오디션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진행되어, 평화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다양한 가치가 무대 위에서 경쟁하고, 관객의 선택과 토론을 통해 전개가 달라진다. 마지막에는 참여자들이 각자의 언어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정의하며 공연이 마무리된다.
연출을 맡은 김현정 대표는 “‘선’이라는 모티브는 분단을 가르는 경계이자, 동시에 서로를 연결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연극을 통해 평화를 상상하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