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이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책 목표의 선언 여부가 아니라, 실제 제도와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는지’가 탄소중립 달성의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녹색전환연구소는 29일 ‘2026 기후·에너지 10대 전망과 제언’ 보고서를 통해 “2026년은 더 이상 방향을 논의하는 시기가 아니라, 정책의 실효성이 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문턱”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소는 기후위기, 지정학적 갈등, 산업·기술 전환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점에서 정책 실행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보고서는 녹색전환연구소가 2023년부터 매년 발간해 온 연례 기후·에너지 전망의 세 번째 결과물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책 환경, 에너지 전환 조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다음 해의 핵심 쟁점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고서는 2026년을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도를 지킬 수 있는 ‘탄소예산’이 사실상 소진 단계에 이르는 시점으로 평가했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해 남은 전 세계 탄소예산은 제한적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기에, 연구소는 “이 같은 조건에서 기존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의 균열이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의 정책 기조 변화도 주요 변수로 지목했는데, 미국은 환경 규제 완화와 국제 협력 약화로 기후 대응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이며, 유럽연합 역시 산업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일부 핵심 규제를 조정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반면 중국은 재생에너지와 녹색산업을 중심으로 국제 공급망 영향력을 확대하며 새로운 기후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연구소는 중국의 약진을 두고 “온실가스 배출 정체와 재생에너지 확대는 희망적 신호”라면서도, “권위주의 국가 주도의 녹색산업 확장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 논리가 기후 대응을 왜곡할 위험도 내포한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국제 환경 속에서 보고서는 한국의 선택을 중요한 변수로 제시했다. 연구소는 “전환을 미루는 결정은 산업과 에너지, 기후 대응 전반에서 구조적 불리함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특히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26년부터 대규모 설비 확충이 불가피하며, 에너지저장장치와 전력 시스템 유연성 확보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입지와 전력 수요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보고서는 수도권에 대규모 전력 수요를 집중시키는 기존 전략이 ‘지산지소형’ 에너지 시스템과 구조적으로 충돌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송전망 확충 부담과 화석연료 의존을 심화시키고, 지역 간 불균형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도 위험 요인으로 제시됐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단기간에 급증할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듯이, 보고서에서도 정부의 ‘AI 산업 육성 전략’이 에너지 전환 원칙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충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정과 금융 역시 전환의 핵심 조건으로 꼽혔다. 연구소는 K-GX 전략이 선언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재정과 금융 시스템이 화석연료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히며, 특히 전환금융이 LNG 발전이나 탄소포집·저장 기술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보고서는 에너지와 기후 정책을 둘러싼 반복된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 시민이 전환의 방향과 속도에 참여하는 ‘기후시민의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수렴이 아니라, 시민을 전환의 ‘공동 설계자’로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설명이다.
기후재난 대응과 관련해서는 ‘오적응’ 위험이 경고됐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오적응을 “기후 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오히려 키우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정의하는데, 연구소는 단기 복구나 개발 위주의 재난 대응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2026년은 남은 탄소예산이 고갈 직전에 이르는 시점이자, 한국이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환 전략을 본격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며 “정책 목표와 재정·금융, 시민 참여가 맞물릴 때 전환은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