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시끄러워야 공부가 된다?
우리가 상상하는 도서관의 풍경은 언제나 고요함 그 자체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책에 파묻힌 모습이 진정한 공부의 전형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 공간인 '예시바(יְשִׁיבָה, Yeshiva)'의 풍경은 정반대다. 이곳은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시끄럽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격렬하게 논쟁한다.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가장 치열하게 공부하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 교육의 핵심인 '하브루타(חֲבוּרוּתָא, Havruta)'다. 그런데 단순히 짝을 지어 토론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탁월한 성과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그들이 토론하는 '도구'가 바로 '히브리어'라는 점이다. 앞선 칼럼에서 다루었듯, 히브리어는 뇌의 인지 부하를 극대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안 그래도 복잡한 히브리어 텍스트를, 혼자 읽기도 버거운 그 내용을 가지고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논쟁까지 벌여야 한다면 우리의 뇌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단순한 학습을 넘어, 뇌의 신경가소성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지적 격투기라 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만든 학습법
'우정' 또는 '동료'를 뜻하는 아람어 어원에서 유래한 하브루타는 수천 년간 유대인의 지적 생존을 책임져온 시스템이다.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그들은 방대한 구전 율법과 토라의 내용을 손실 없이 보존하고 후대에 전달해야 했다. 텍스트가 귀하던 시절, 스승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동료와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서로의 오류를 교정해 주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들이 다루는 히브리어 경전은 모음이 없어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했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적 연결고리가 생략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혼자서 '조용히' 읽는 행위는 오독의 위험을 높일 뿐만 아니라, 텍스트 깊은 곳에 숨겨진 의미를 캐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하브루타는 불친절한 히브리어 텍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탄생한 집단지성 시스템이었다. 파트너는 나의 논리적 허점을 공격하는 적군이자, 나와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다. 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히브리어와 하브루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어 유대인의 사고 체계를 형성했다.
듣는 뇌 vs 말하는 뇌, 학습 효율의 결정적 차이
현대 뇌과학과 교육학은 하브루타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미국 행동과학연구소(NTL)가 발표한 '학습 피라미드' 이론에 따르면,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경우 24시간 후 기억에 남는 비율은 5%에 불과하지만, 서로 설명하고 토론할 경우 그 비율은 90%까지 치솟는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수동적으로 정보를 입력받을 때는 뇌의 일부 영역만 활성화된다. 하지만 하브루타를 통해 상대방의 말을 듣고(청각 피질), 내용을 분석하며(전두엽), 반박할 논리를 구성하고(브로카 영역), 이를 말로 내뱉는(운동 피질) 과정은 뇌 전체를 사용하는 전뇌적 활동이다.
특히 히브리어로 토론할 때 이 과정은 더욱 역동적이다. 우뇌를 사용해 모음 없는 단어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문맥을 파악하는 동시에, 좌뇌를 사용해 상대방의 논리를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의 정보 교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는 고차원적인 사고력과 창의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강력하게 단련시킨다고 설명한다. 즉, 히브리어 하브루타는 뇌의 '사회적 본능'과 '인지적 도전'을 동시에 자극하는 최고의 두뇌 훈련법인 셈이다.
히브리어의 구조가 강제하는 논리적 비약
히브리어로 진행되는 하브루타가 다른 언어의 토론과 차별화되는 핵심은 히브리어 특유의 '압축성'과 '연결성'에 있다. 서구 언어는 논리적 연결을 위해 '왜냐하면', '그러므로', '하지만'과 같은 접속사와 관계사를 풍부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고대 히브리어는 이러한 연결 어구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문장과 문장이 툭툭 던져지듯 나열되는 경우가 많아, 그 사이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토론자들이 스스로 추론하고 구축해야 한다. 하브루타 파트너가 "이 구절과 저 구절은 무슨 관계지?"라고 공격 들어올 때, 방어자는 생략된 논리의 다리를 순식간에 건설해야 한다.
이 과정을 유대인들은 '필풀(פִּלְפּוּל, Pilpul, 고추처럼 매운 논쟁)'이라 부른다. 또한, 히브리어의 독특한 어근(שׁוֹרֶשׁ, Shoresh) 시스템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개념들을 하나의 뿌리로 묶어준다. 예를 들어 '책(סֵפֶר, Sefer)', '이야기하다(סִיפֵּר, Sipper)', '숫자(מִסְפָּר, Mispar)'는 모두 S-P-R(ס-פ-ר)라는 동일한 어근에서 나왔다. 히브리어로 토론한다는 것은 이처럼 거미줄처럼 연결된 의미의 망을 타고 넘나들며 다각도로 문제를 바라보는 훈련을 의미한다. 언어 구조 자체가 사용자에게 끊임없는 논리적 도약과 입체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다.
정답을 찾는 사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인간으로
우리는 정해진 정답을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찾아내느냐를 두고 경쟁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조용한 교실에서 교사의 말을 받아 적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시끄러운 하브루타는 낯설고 불편한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그 어떤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기존의 학습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주어진 정답을 의심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재정의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다. 히브리어 하브루타는 바로 이 '질문하는 근육'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불친절한 히브리어 텍스트 앞에서 파트너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는 동안, 당신의 뇌는 수동적인 정보 수용자에서 능동적인 지식 생산자로, 기존 질서의 순응자에서 창조적인 파괴자로 진화할 것이다. 도서관의 정적을 깨고 파트너와 마주 앉아라. 그리고 히브리어라는 낯선 도구를 들고 질문의 난타전을 시작하라.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당신의 뇌는 비로소 진짜 공부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잡담으로 다른 이들의 공부를 훼방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잡담은 휴게실을 이용하길 당부하는 바이다.
* 오늘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히브리어 하브루타처럼 치열하지는 않더라도,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은 시도가 당신의 뇌를 깨우는 스위치가 될 것입니다.
[ 허동보 목사 ]
ㆍ現 수현교회 담임목사
ㆍ現 수현북스 대표
ㆍ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석사(M.Div)
ㆍ미국 Covenant University 신학석사(T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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