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마(赤馬, 붉은 말)’라는 용어는 전통의 간지(干支) 기년법과 오행(五行) 이론이 결합된 개념에서 유래한다. 이는 천간(天干) 가운데 병(丙)이 오행상 화(火)에 속하면서 붉은색을 상징하고, 지지(地支)에서 오(午)가 십이지(十二生肖) 가운데 말에 해당한다는 점에 근거하여, 두 요소의 결합인 병오년(丙午年)을 곧 “적마년(赤馬年)”이라 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 문헌적 근거에 따르면, 이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은 남송(南宋) 학자 채망(柴望)이 저술한 《병정귀감(丙丁龜鑑)》에서 확인된다. 채망은 전국시대부터 오대(五代)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병오년(丙午)과 정미년(丁未)을 열거·분석하면서, 해당 연도에 전쟁, 정치적 혼란, 혹은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특정 연간이 지닌 정치·사회적 불안 가능성을 경계하고자 하였으며, 저서에서 병오년을 “적마”, 정미년을“홍양(紅羊)”이라 명명하고, 이를 통칭하여 “적마홍양겁(赤馬紅羊劫, 적마홍양의 변)”이라 칭함으로써, 잠재적 사회 혼란의 시기를 상징적으로 지칭하였다.
적마의 기원에 관한 다른 설명으로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설화가 북송 말기와 연결된다. 전승에 따르면 도교 정일파(正一派)의 천사였던 “장계선(張繼先)”이 송 휘종(宋徽宗)에게 “적마홍양의 징조”를 언급하며 국가적 변고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고 한다. 이후 1126년(병오년)에 발생한 “정강의 변(靖康之變)”으로 북송 왕조가 멸망하면서, 이 사건이 병오년에 해당한다는 점이 후대에 강조되었고, 그 결과 ‘적마홍양’이라는 관념은 역사적 사건과 결부되어 더욱 강력한 상징성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이 두 해에는 수양(修養)하며 화를 피해야 한다고 여겼고, 일부 지역에서는 혼인이나 토목공사를 피하는 금기까지 생겨났다. 이를 천명과 결부시켜 피할 수 없는 순환적 재난으로 보았으며, 문인들은 종종 이를 난세의 은유로도 사용했다.
사실 대형 자연재해나 사회적 사건은 특정 연도에 집중되지 않으며, 적마홍양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마홍양은 단지 간지 연도의 시간 표기일 뿐, 길흉의 속성은 없으며 재난이나 혼란과 필연적 인과관계도 없다. 이는 고대인의 인식 한계와 미지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