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현재, 영어권 웹 콘텐츠의 절반 이상은 더 이상 인간의 손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문장이 주는 섬뜩함은 이제 단순한 경고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검색엔진최적화(SEO) 전문 기업 그라파이트(Graphite)가 최근 발표한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AI가 작성한 기사, 리뷰, 상품 설명 등의 텍스트가 인간이 작성한 콘텐츠의 수를 공식적으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호주 국립 사전과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2025년 '올해의 단어'로 'AI 슬롭(AI Slop)'을 선정했다. 'AI 슬롭'이란 품질 보다는 검색 알고리즘 노출을 목적으로 AI가 대량 생산해낸 저질 콘텐츠, 이른바 '디지털 찌꺼기'를 뜻하는 신조어다.
인터넷의 주도권이 인간에게서 기계로 넘어간 지금, 우리는 온라인상의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본지는 AI 콘텐츠 범람의 원인과 그 파급력,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해 본다.
정보의 고속도로에서 '콘텐츠 쓰레기장'으로
과거 인쇄술과 텔레비전, 소셜 미디어의 등장이 콘텐츠 제작 비용을 낮추며 미디어 혁명을 일으켰다면, 생성형 AI의 등장은 그 비용을 '0(Zero)'에 가깝게 만들었다. 1990년대 인간 중심의 블로그와 포럼, 2000년대 검색 키워드 중심의 콘텐츠를 지나, 2020년대 초반 등장한 콘텐츠 공장(Content Farm)들은 이제 GPT-4,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 등의 고도화된 모델을 통해 진화했다.
이제 개인 혼자서도 오후 한나절이면 수백 개의 제품 설명을, 한 달이면 수천 개의 블로그 포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콘텐츠의 대다수가 독자에게 가치를 제공하기보다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생산된, 맥락 없고 영혼 없는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유인: 클릭이 곧 돈이 되는 구조
'AI 슬롭'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철저한 경제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광고 수익 모델이다. 인간 작가를 고용해 월 100건의 기사를 생산하는 비용과 AI를 이용해 월 10,000건을 생산하는 비용을 비교하면 답은 명확하다. 오리지널리티.ai(Originality.ai)의 분석에 따르면, 이미 특정 분야의 신규 SEO 콘텐츠 중 60% 이상이 AI에 의해 생성되고 있다.
둘째, 플랫폼 알고리즘의 맹점이다. 검색 엔진과 소셜 미디어는 '품질'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최신성, 참여도, 키워드 적합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AI는 트렌딩 토픽을 모방하고 그럴듯한 제목을 뽑아내는 데 최적화되어 있어, 겉보기엔 그럴싸한 '양질의 정보'처럼 위장하여 상위 노출을 선점한다.
셋째, 빅테크와 미디어의 결합이다. 2025년 오픈AI(OpenAI)와 메타(Meta) 등 빅테크 기업들은 뉴욕타임스, 뉴스코퍼레이션 등 주요 언론사와 수억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저널리즘의 수익화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거대 AI 플랫폼 내에 정보를 가두고 AI 학습을 위한 콘텐츠 생산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신뢰의 붕괴: 무엇이 진짜인가?
가장 우려되는 점은 콘텐츠의 '식별 불가능성'이다. AI가 작성한 가짜 리뷰, 존재하지 않는 사연을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 심지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의학적으로 틀린 건강 정보들이 진짜 정보와 뒤섞여 유통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독자들은 정보의 진위 자체를 의심하게 되면서 전반적인 신뢰도가 하락하고, 비슷비슷한 어조의 기계적 글쓰기에 피로감을 느낀다. 나아가 저비용으로 생성된 가짜 뉴스와 조작된 정치적 서사는 여론을 호도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결론: 희소해진 '인간다움'이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AI는 인터넷 생태계의 파괴자인가?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마존의 리뷰 요약 기능이나 접근성을 높이는 번역 툴처럼 AI는 여전히 유용한 도구다. 관건은 이를 '인간의 통찰력을 대체하는 용도'가 아닌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콘텐츠 전략가들과 미디어 학자들은 역설적으로 "콘텐츠가 흔해질수록 인간의 관심과 신뢰는 더욱 희소하고 비싼 자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100% AI 생성 콘텐츠를 표방했던 일부 사이트들은 초기 트래픽 상승 후 알고리즘 제재로 급격한 몰락을 겪기도 했다.
결국 미래의 인터넷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은 '진정성'이다. 독자들은 이제 "누가, 어떤 근거로 썼는가"를 확인해야 하며, 창작자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경험과 심도 있는 취재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자동화된 브로슈어' 같은 인터넷을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숨결이 살아있는 소통의 장을 지켜낼 것인가. 2025년의 끝자락, 우리가 던지는 클릭 한 번이 그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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