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검색’이라는 인지적 노동에서 탈출해 ‘대화’를 통한 즉각적 결론의 시대로 진입했다. 함샤우트 글로벌 AI 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미래 예측 보고서 ‘ATR 2026’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인류인 ‘타임 해커(Time Hacker)’가 등장했음을 선포했다. 이들은 기술적 호기심보다 ‘시간의 가성비’를 극대화하는 데 사활을 거는 집단으로, AI를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실질적인 인생 설계 도구로 정의하고 있다.
"더 이상 검색창을 떠돌지 않는다"... 타임 해커의 역습
생성형 AI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1,386명을 정밀 추적한 결과, 사용자 10명 중 4명에 가까운 36.9%가 사용의 제1목적으로 ‘편의성과 시간 확보’를 꼽았다. 과거 학습(23.9%)이나 단순 흥미(17.9%) 위주였던 사용 패턴이 이제는 철저하게 실용주의 노선으로 갈아탄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더 이상 수십 개의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비교·대조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수석편집장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정보의 ‘소비’ 방식이 ‘탐색’에서 ‘수용’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타임 해커들은 고민할 시간에 실행을 택하며, AI가 내놓는 요약된 결론을 바탕으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선다. 이들에게 AI는 시간을 절약해주는 ‘치트키’와 다름없다.
실용주의가 가른 온도 차... "효율을 준 만큼 만족한다"
조사 결과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사용 목적에 따른 만족도의 극심한 격차다. 과제 수행이나 실생활 문제 해결 등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AI를 도구로 부린 사용자들은 80% 후반대의 압도적인 긍정 평가를 내놨다. 반면, 단순히 재미를 위해 접근한 이들의 만족도는 60%대에 머물렀다.
결국 현존하는 생성형 AI의 진가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업무 효율’과 ‘복잡한 문제의 단순화’에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놀라운 사실은 응답자의 무려 63%가 특정 영역에서 “AI가 인간 전문가보다 낫다”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무려 83.6%의 응답자는 AI 덕분에 자신의 업무 역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이제 AI는 보조 도구를 넘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엑소수트(Exoskeleton)’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직장과 집의 경계 붕괴, '24시간 올라운드' AI 라이프
AI 활용의 공간적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사무실(57.4%)과 가정(55.6%)에서의 사용 비중이 소수점 단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AI가 공과 사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음을 시사한다. 직장에서는 보고서 초안을 잡던 도구가 퇴직 후 집에서는 저녁 메뉴 추천이나 자산 관리 상담가로 변신한다. 일상 전체를 AI라는 필터로 최적화하는 ‘24시간 라이프 최적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동 중 사용률이 8%대에 그친 점은, 아직 대중이 AI를 심도 있는 ‘과업(Task)’ 수행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이동 중에 잠깐 들여다보는 가벼운 콘텐츠가 아니라, 큰 화면과 집중력이 필요한 진지한 의사결정 도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DCA 모델의 탄생: 욕망에서 행동까지 단 '두 단계'
함샤우트 글로벌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DCA(Desire-Chat-Action) 모델’을 제시했다. 과거의 정보 습득 방식이 ‘욕구 발생 → 검색 → 링크 클릭 → 정보 수집 → 비교 분석 → 결정 → 행동’이라는 지루한 7단계를 거쳤다면, 타임 해커들의 프로세스는 혁명적으로 짧다. 욕구(Desire)가 생기면 즉시 AI와 대화(Chat)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곧바로 행동(Action)한다.
이 구조적 변화의 핵심은 ‘탐색’과 ‘분석’의 실종이다. AI가 수만 개의 정보를 미리 학습해 큐레이션한 단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이는 마케팅과 비즈니스 환경에도 거대한 폭풍을 예고한다. 이제 구글 상단 노출을 노리는 SEO(검색 엔진 최적화)를 넘어, AI의 답변에 자사의 정보가 포함되게 만드는 ‘AEO(AI 답변 최적화)’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본 리포트는 AI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의 ‘시간 관리 철학’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타임 해커의 등장은 정보 비대칭의 해소를 가속화하고 의사결정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과 개인은 이제 ‘검색하는 능력’이 아닌 ‘AI에게 질문하고 그 결과의 진위여부를 가려내는 능력’을 갖춰야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은 ‘생각을 아끼는 시대’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 생각을 효율화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답변은 우리에게 엄청난 속도를 부여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정보의 편향성을 읽어내는 비판적 사고는 타임 해커가 갖춰야 할 최후의 보루다. 시간을 해킹하되, 자신의 주관까지 해킹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