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마태복음 11장 강해


장재형목사 설교를 바탕으로 마태복음 11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의 의미를 프로즌 플래닛2 순록의 여정과 연결해, 십자가의 대속과 쉼, 사랑의 멍에, 영생의 소망을 깊이 있게 해설한다.


프로즌 플래닛 II의 화면은 얼음과 바람, 침묵과 폭풍이 번갈아 교차하는 세계를 비춘다. 북극과 남극의 극지뿐 아니라 얼어붙은 사막과 높은 산맥, 설원으로 덮인 숲과 차가운 바다까지, 차가움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생명은 늘다음 한 걸음을 두고 결단한다. 그중에서도 깊은 강을 건너 새로 난 풀을 찾아 나서는 북극 순록의 행렬은 단순한 자연의 장관을 넘어, 존재의 이유를 붙들기 위한 몸부림처럼 다가온다. 눈앞의 물살은 살얼음처럼 차갑고, 흐름은 거칠다. 그럼에도 수천 마리가 한 방향으로 밀려가며 건넌다. 왜냐하면 강 건너편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초록이 있고, 그 초록은 곧 생명이며, 생명은 오늘을 견디게 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 왔는가, 우리는 어디까지 진리를 찾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아 보았는가.


장재형(Olivet University 설립)목사가 마태복음 11장을 강해하며 반복해서 붙드는 대목은, 인간이 진리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기보다 오히려 진리 자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순록이 강을 건너야만 풀을 얻듯, 우리는 스스로 강을 건너 진리를 확보해야 할 것 같지만, 복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을 연다. 우리가 진리를 향해 끝없는 위험을 감수하며 나아간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향해 내려와 손을 내민다. 그 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이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이 초대는 지친 심리를 달래는 따뜻한 문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말씀이 닿는 지점은 인간 존재가 짊어진 가장 본질적인 무게, 곧 죄의 짐과 그 죄가 만든 불안, 그리고 죄를 가리기 위해 스스로 쌓아 올린 수많은 자기정당화의 구조다.



장재형목사는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피로를 넘어선 신학적 현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피곤해서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쉬지 못한다.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아도 마음은 늘 추격당한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자책으로 돌아오고, 오늘의 과시가 내일의 공허로 변한다. 인간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살아가며, 그 변호가 반복될수록 내면의 무게는 더해진다. 로마서 1 18-20절이 묘사하듯,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주셨는데도 인정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결국 피조물을 창조주 대신 세워 버리는 자리에서 인간의 마음은 자발적 망각과 불안의 순환에 갇힌다. 진리는 바깥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눌리고 억눌린다. 그래서 복음의 초대는더 열심히 하라가 아니라내게로 오라.


요한복음 1 29절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언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문장을 통해 구원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한다. 죄의 문제는 인간의 결심으로 얇아지지 않으며, 종교적 수양으로 잠시 가려질 뿐 근본적으로 제거되지 않는다. 구약의 제사가 반복되었던 까닭은 죄가 반복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이 죄를 완전히 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반복되는 제의의 연쇄를 끝내는 단번의 희생으로, 죄의 무게를 자신의 어깨로 옮기신다. 여기서옮긴다는 것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실재다. 인간이 벗어 던질 수 없는 무게를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셨다는 선언은, 종교가 늘 요구해 온네가 감당하라라는 명령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마태복음 20 28절은 그 뒤집힘을 더 분명히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장재형목사는 대속물이라는 단어가 지닌 날카로운 현실감을 살려, 구원이의 문제임을 잊지 않게 한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값을 치러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지불할 수 없는 죄값을 예수께서 지불하셨고, 그 대가가 십자가다. 그래서 기독교의 평안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이미 지불된 대가 위에 세워진 확고한 안식이다. 요한복음 14 27절이 말하는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는 말이 여기서 힘을 얻는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조건부이고 가변적이지만, 그리스도의 평안은 십자가의 사실에 근거한 불가역적 선물이다.


장재형목사가 마태복음 11 28-30절을 풀어 갈 때, 그는 짐을 두 층으로 분별한다. 하나는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죄의 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기꺼이 메어야 할 그리스도의 멍에다. 죄의 짐은 인간을 무너뜨리지만, 멍에는 인간을 살린다. 언뜻 모순처럼 들리지만, 성경은 오히려 그 역설 속에서 자유의 구조를 설명한다. 멍에가 없으면 인간은자유라는 이름 아래 욕망과 두려움의 굴레에 매인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멍에는 사랑과 진리의 방향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을 자기파괴적 방황에서 건져낸다. 멍에가 쉽고 짐이 가볍다는 말씀은, 삶에서 책임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책임의 근원이 사랑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사랑하기 때문에가 된다.


이 지점에서 장재형목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의 책망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마태복음 23 4절에서 예수는 그들이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신다. 종교는 언제든지 타인의 어깨 위로 무게를 이사시키려는 유혹을 받는다. 규칙의 형태로, 평가의 언어로, 비교의 시선으로, 공동체의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짐을 더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 모두가 이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은 짐을 내려놓게 하는 소식인데,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죄책과 두려움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조종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라 바리새인의 길에 가깝다. 예수의 초대는 억압이 아니라 해방이고,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이다.


그러나 해방은 방종이 아니다. 죄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다른 종류의 부르심 앞에 선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사랑의 멍에는 공동체적 책임을 포함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홀로 쉬게 두는 분이 아니라, 쉬게 하신 뒤 다시 사랑의 길로 보내는 분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의 쉼은 소극적 휴식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과 사명의 재정렬을 의미한다. 빌립보서 4 7절이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할 때, 그 평강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기분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능동적 보호다. 무엇을 지켜 내는가. 사랑을, 소망을, 그리고 섬김의 태도를 지켜 낸다.


프로즌 플래닛 II의 순록이 강을 건너는 장면은 바로 그능동성을 떠올리게 한다. 순록은 물살에 떠밀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기 위해 방향을 잡고, 무리를 의지하며, 끝까지 발을 내딛는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예수께 오는 것은 단지 종교적 감정에 젖는 순간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며, 삶의 주권을 주께 돌려 드리는 결단이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진리를 찾아 목숨을 건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에게 찾아왔음을 말하면서도,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에는 분명한 응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초대가 선물이라면, 믿음은 그 선물을 두 손으로 받는 행위다. 받지 않으면 선물은 여전히 문 앞에 남는다.


로마서 1장은 인간이 하나님을 외면할 때 어떤 방식으로 세계가 뒤틀리는지 보여 준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을 때, 감사가 사라지고,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단지 도덕적 타락의 목록이 아니라, 존재론적 붕괴의 과정으로 읽는다. 인간의 안식이 무너지는 이유는, 창조주와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과 관계와 성취를 통해 쉼을 얻으려 하지만, 정작 쉼은 관계의 회복에서 온다. 그래서 요한복음 17 3절이 영생을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영생은 미래에만 주어지는 시간 연장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관계의 질적 변화다. 그 관계가 회복될 때, 평안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기초가 된다.


장재형목사는 구속의 원리를 말할 때 감상적 언어로 십자가를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모든 구원의 사다리를 철거하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주내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는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결국 교만과 절망을 번갈아 낳는다. 조금 잘하면 교만해지고, 조금 무너지면 절망한다. 그 사이에서 인간은 쉼을 잃는다. 예수는 그 사이클을 끊기 위해 오셨다. ‘어린 양이라는 상징이 말해 주듯, 그는 힘으로 억압하지 않고, 자기 희생으로 구원한다. 그 희생은 무력함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사랑의 형태다.


이 사랑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명화가 있다. 미켈란젤로의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몸을 품에 안은 마리아를 대리석으로 새겨, 무게와 연민과 침묵을 한 화면에 담아낸다. 차가운 돌에서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비탄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장면이 단지 한 어머니의 슬픔이 아니라 인류의 짐을 대신 짊어진 구속의 무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죄의 짐을 예수께 내려놓으라는 권면은, 피에타의 품이 보여 주는 것처럼, 누군가가 이미 그 무게를 받아 안았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우리는 그 품 앞에서 더 이상 자기 변호를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이미 대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으로 측정되는가. 장재형목사는 마태복음 20 28절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섬김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섬김은 도덕적 가산점이 아니라, 대속의 은혜가 현실 속에서 흘러나오는 통로다. 예수가 섬기러 오셨다면, 예수께 속한 사람도 섬김의 길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도 다시 바리새인의 유혹이 고개를 든다. 섬김조차도 인정 욕망의 무대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섬김을 배우되, 예수에게서 배운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주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교회 안에서 흔히 벌어지는영적 성취 경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지 경계한다. 어떤 이들은 예배 출석의 횟수로, 어떤 이들은 봉사의 양으로, 어떤 이들은 신앙 지식의 깊이로 서로를 비교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조용히 떠나고, 남은 사람들마저인정받기 위해신앙을 연기한다. 이는 복음의 쉼과 정반대다. 마태복음 11장의 초대는, 상처 입은 자에게 먼저 다가오는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과표를 보고 우리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성과표에 눌린 자를 부른다. 그리고 그 부르심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프로즌 플래닛 II가 보여 주는 추위의 세계는, 역설적으로 생명의 따뜻함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눈보라가 강할수록, 작은 체온이 얼마나 소중한지 드러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삶이 차가워질수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경험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추상적 개념으로 두지 않고, ‘짐을 옮겨 지는 사건으로 이해하라고 촉구한다. 예수는 우리의 짐을 들어 올리셨고, 우리는 그분의 멍에 아래서 사랑을 배운다. 이때 사랑은 감정의 급류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의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경청으로, 때로는 용서로, 때로는 함께 짐을 들어 주는 실천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은 인간의 의지력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내게 배우라는 구절을 신앙의 핵심 훈련으로 강조한다. 배움은 관계의 결과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을 배울 때, 율법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난다. 율법주의는 늘가 중심이고, 그래서 늘 무겁다. 반면 복음은그리스도가 중심이고, 그래서 오히려 가볍다. 가볍다는 말은 문제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문제를 짊어지는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다. 나 혼자 짊어지던 삶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짊어지는 삶으로 옮겨 간다.


장재형목사는 설교에서 자주우리는 목숨을 걸고 진리를 찾지 않았다. 그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된다는 고백을 되풀이한다. 이 말은 신앙의 출발을 겸손하게 만든다. 신앙은 인간의 영웅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담이다. 우리는 위대한 탐험가처럼 진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사람처럼 발견된 것이다. 그 발견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과시가 아니라 수용이다. 예수의 초대 앞에서 우리는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세우기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한다. 그 인정이 곧 회개이며, 회개가 곧 쉼의 문을 연다.


그 쉼은 개인의 내면에서 멈추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쉼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상처를 가리는 가면무도회가 아니라, 상처가 치유되는 병원이어야 한다. 짐을 나누는 공간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실패를 들춰내기보다, 함께 다시 일어서는 힘을 주어야 한다. 이는 마태복음 11장의 초대가 교회 안에서 구체화되는 방식이다. 또한 이것은 세상을 향한 증언이 된다. 세상이 교회를 볼 때, 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더 가벼운 소망을 발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평안은, 결국 영생의 약속과 분리될 수 없다. 장재형목사는 영생을 단순히죽어서 천국 가는 티켓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영생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 요한복음 3 16절이 말하듯,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신 사랑이며, 그 사랑은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에서 건져 영생으로 옮긴다. 멸망은 단지 미래의 심판만이 아니라, 현재의 분열과 공허, 두려움 속에서 이미 시작되는 삶의 붕괴다. 영생은 그 붕괴가 치유되는 삶의 회복이다.


그래서 장재형목사가 전하는 마태복음 11장 강해는 단순한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재해석이다. 우리는무거운 짐을 진 존재이며, 그 짐의 가장 깊은 층에는 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을 받았다. 그 길은 자기개선이 아니라 대속이며, 대속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분이 우리 죄를 지고 가셨기에, 우리는 그분께 나아가 쉼을 얻는다. 그리고 쉼을 얻은 우리는 다시 사랑의 멍에를 메고 세상을 섬기며, 더 이상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짐을 덜어 주는 존재가 된다.

순록이 강을 건너 새로 난 풀을 향해 나아가듯, 우리도 익숙한 죄책과 두려움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놀라움은, 우리가 홀로 그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 앞에서 물살을 가르셨다. 우리는 그분의 초대에 응답해 발을 내딛는다. 믿음은 위험을 모르는 무모함이 아니라, 사랑을 신뢰하는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는 결국 우리를 더 넓은 초록으로, 더 깊은 평안으로, 더 견고한 영생의 소망으로 이끈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듯,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진리는 우리에게 다가왔고, 지금도내게로 오라고 말한다.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볍고도 단단한 사랑의 길을 걷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멍에는 1세기 팔레스타인 농경 사회의 일상어이기도 했다. 멍에는 두 짐승의 목에 함께 얹혀져 밭을 갈게 하는 도구이며, 무게를 분산시키고 방향을 맞추는 장치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내 멍에라는 표현을 단순히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추상으로만 보지 않게 한다. 멍에는 둘이 함께 메는 것이고, 그 멍에를 예수가내 것이라고 부르신다는 사실은, 제자가 홀로 밭을 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보폭으로 걷는 동반자라는 뜻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멍에가 쉽고 가볍다는 말은, 우리 인생의 현실적 난이도가 갑자기 낮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의 가장 무거운 축이 예수의 어깨로 옮겨진다는 의미다. ‘혼자 감당하라는 세상의 철학은, 결국 인간을 분열시키고 고립시키며 소진하게 만든다. 반대로 복음은 함께 멘다. 기도할 때, 회개할 때, 섬길 때, 우리는 여전히 땀을 흘리지만, 그 땀은 절망의 땀이 아니라 사랑의 땀이다.


또한 예수께서 약속하신 쉼은, 일상을 정지시키는 무기력한 휴식이 아니라,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복이다. 장재형목사는 쉼을영혼의 정렬이라고 부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 놓는다. 화면 속 순록 떼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흩어질 듯하다가도 결국 다시 한 방향으로 모이듯, 인간의 마음도 수많은 정보와 경쟁, 관계의 기대 속에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기준이 뒤섞인다. 그때 예수의 초대는 흩어진 마음을 다시 중심으로 모은다. 중심이란 곧 하나님과의 관계다. 그 중심이 회복될 때, 우리는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안정감을 얻는다. 이는 단순한 자기암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로 우리 마음을 붙드신다는 신앙의 고백에서 비롯된다.


장재형목사는 현대인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한다. 성과 중심 사회가 요구하는 끝없는 자기증명, 가족과 조직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 비교와 평가가 일상화된 디지털 문화, 그리고괜찮은 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면의 피로가 겹겹이 쌓인다. 여기에 종교적 언어가 더해지면, 사람은 죄의 짐 위에 또 다른 짐을 얹는다.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겪는다는 식의 단순한 해석은 상처 입은 사람을 더 깊은 죄책으로 몰아넣는다. 장재형목사는 복음이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질식시키지 않도록, 십자가의 객관적 사건과 은혜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께 나아갈 때, 예수는 먼저 정죄의 돌을 내려놓게 하신다. 정죄가 멈출 때, 변화가 시작된다. 은혜는 방종의 핑계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의 토양이다.


그리스도의 초대에 응답하는 믿음은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다시 짜는 작업을 포함한다. 장재형목사는예수께 온다는 말을 추상화하지 말라고 말한다. 예수께 온다는 것은, 내 죄와 상처와 실패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용기다. 또한 예수께 온다는 것은, 관계를 새롭게 정돈하는 결단이기도 하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고, 내려놓아야 할 집착이 있으며, 끊어야 할 중독이 있고, 다시 시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내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움직이게 된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사랑의 멍에는, 이런 구체적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동력이다.


프로즌 플래닛2가 기후 변화의 영향을 조명하듯, 장재형목사는 신앙이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과도 맞닿아 있음을 넌지시 상기시킨다. 얼음이 녹고, 서식지가 줄어들고, 생명들이 더 위험한 경로를 택해야 하는 현실은 단지 과학적 데이터가 아니라, 피조 세계가 신음하는 장면이다.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는 결국 약한 생명에게 가장 먼저 고통을 전가한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욕망의 속도를 줄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겸손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쉼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피조 세계를 향한 치유의 리듬으로 확장된다.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이 시대의 추위를 덜어 주는따뜻한 공간이 되려면, 무엇보다 말의 무게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앙의 언어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누군가의 약함을 조롱하거나, 고난을 단순한 공식으로 해석해 버리거나, 회개를 빌미로 지배하려는 언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방식이다. 반대로 예수의 언어는 진실하되 상처를 덧내지 않는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되, 죄인을 절망에 가두지 않는다. 장재형목사가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성숙은 바로 이 균형에 가깝다. 진리를 붙들되, 사랑으로 말한다. 정의를 사랑하되, 자비를 잃지 않는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무거운 짐을 더하는 장소가 아니라, 짐을 나누고 방향을 다시 찾게 하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다 내게로 오라.” 장재형목사는 이 초대가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격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순록이 강을 건너는 이유가 완벽함이 아니라 생존이듯,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는 이유도 완전함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다. 우리는 갈증이 있기 때문에 물을 찾는다. 우리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쉼을 찾는다. 복음은 그 필요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필요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필요를 인정한 자에게, 예수는 변함없이 평안과 영생의 약속을 펼쳐 보이신다.


바로 지금 그 초대는 유효하다.


davidjang.org
작성 2025.12.21 20:21 수정 2025.12.21 20:21

RSS피드 기사제공처 : 굿모닝매거진 / 등록기자: 최우석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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