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개발협력주간을 맞아 국무조정실, 에코피스 아시아, 월드비전, 플랜 인터내셔널과 함께 기후정의포럼을 열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기후 위기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포럼 참가자들은 방글라데시, 페루, 에티오피아, 라오스 등 기후취약국 사례를 공유하며 취약계층과 지역사회를 중심에 둔 ‘기후 정의’ 실현 전략을 제시했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11월 28일 국무조정실이 주최하고 세이브더칠드런, 에코피스 아시아, 월드비전, 플랜 인터내셔널이 공동주관한 기후정의포럼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개발협력주간을 맞아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활동하는 NGO들이 기후 위기 대응 접근법과 사업 경험을 공유하고, 기후 정의 실현을 위한 연대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의 문을 연 사람은 세이브더칠드런에서 기후와 환경 문제를 고민하며 활동하는 아동·청소년 모임 ‘어셈블(EARTHESEMBLE)’의 권순민 아동이었다. 권 아동은 ‘기후 위기에서 태어나다’를 주제로 개회식을 진행하며 기후 변화가 태어난 세대의 일상이자 생존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아동과 청소년이 기후 논의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며 포럼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진 축사에서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은 기후 변화가 특히 미래 세대와 취약계층에 불균형한 부담을 지운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세대의 선택이 아이들의 삶을 좌우한다”며,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 권리 관점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전했다. 정은영 국무조정실 개발협력지원국장도 축사에서 개발협력 분야에서 기후 정의를 반영한 정책과 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기조 발제는 국제환경개발연구소(IIED)에서 기후 회복력, 금융, 손실 및 피해를 담당하는 리투 바라드와즈(Ritu Bharadwaj) 디렉터가 맡았다. 바라드와즈 디렉터는 기후 취약국이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기후 재난의 피해는 가장 크게 입는 현실을 짚으며, 기후 정의 관점에서 국제개발협력 주체 간 연대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후 회복력 강화와 손실·피해 지원을 위한 재원 조성과 정책 연계 필요성을 설명했다.
각 기관의 현장 사례 발표도 이어졌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신윤 인도적지원·기후위기대응센터 1팀 매니저가 방글라데시와 페루에서 진행 중인 사업을 소개했다. 기상·기후 정보를 활용해 재난을 사전에 예측하고, 조기 경보와 선제적 조치로 피해를 줄이며 지역사회 회복력을 높이는 예측적 조치(anticipatory action) 접근을 적용한 사례로, 신 매니저는 “기후 정보를 토대로 재난 전에 대응하는 구조를 갖추면 취약가구의 피해와 비용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월드비전 국제사업본부 기후변화대응 손정은 전문가는 에티오피아에서 추진 중인 탄소 크레딧 연계 사업을 소개했는데, 이 사업은 산림 복원과 토지 관리 개선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손 전문가는 “기후 대응 사업이 환경 보호를 넘어 지역 경제와 생계 개선으로 이어질 때 주민들의 참여와 수용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플랜 인터내셔널 대외협력본부 국제개발사업팀 김지인 과장은 라오스 보케오 주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 적응 사업을 사례로 발표했다. 농가의 기후 취약성을 분석하고, 작물 다변화, 물 관리 개선, 농업기술 교육 등을 통해 농가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사업사례를 통해 김 과장은 “농촌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에게 맞는 적응 전략을 설계하는 과정이 기후 정의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포럼에서는 국제NGO들이 기후 취약국의 지역 주민과 함께 수행하는 지역 기반 대응 활동의 의미도 조명됐다. 여성, 청년, 학생 등 다양한 지역 구성원이 참여하는 사업들은 국가정책과 방향을 같이 하면서도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상향식 사업과 달리, 지역 주민의 필요와 현실을 중심에 두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특히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어촌 주민과 지역 공동체가 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현지 전통지식과 생태 환경을 반영한 적응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이 강조됐다.
2부 패널 토론에서는 세이브더칠드런 장설아 인도적지원·기후위기대응센터장이 좌장을 맡아 기후 정의 실현과 회복력 강화를 위한 다자협력과 NGO의 역할을 주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에는 손송희 한국국제협력단(KOICA) 기후환경·경제개발팀장, 소나 아미나타 은굼(Sohna Aminatta Ngum)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선임 담당관, 이태일 에코피스아시아 한국본부 사무처장, 장병일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초빙교수(그린아이디어랩 대표), 최예지 디아이랩 주식회사 연구소장(CTO), 홍승현 한국투자증권 카본솔루션부장이 참여했다.
손송희 팀장은 정부 차원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전반에 기후 정의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발도상국의 기후 취약성과 사업 효과를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와 측정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후 위험과 취약계층 영향을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코피스아시아 이태일 사무처장은 맹그로브숲 복원, 사막화 방지 등 생태계 기반 사업을 소개하며 자연생태기반 기후적응(EbA)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국제협력사업에서 생태계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중요한 수혜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생물다양성 증대를 통해 기후 적응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지 전통지식, 자연생태계 특성에 대한 이해, 정부와 전문기관, 주민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장병일 초빙교수는 국제개발협력 기본법과 중장기 전략에 기후 정의와 인권 기반 접근을 명시할 것을 제언했다. 장 교수는 모든 ODA 사업에 취약계층 영향과 형평성을 점검하는 ‘기후 정의 영향평가’를 도입해 실제 사업 설계와 집행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아울러 정책 실행 방식에서도 정부 중심 모델에서 시민사회와 지역사회 중심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사회조직(CSO)을 지원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필수 파트너로 격상해 CSO 경유 ODA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간 부문과 기술 기반 기관의 참여도 논의됐다. 패널들은 기업과 연구소가 탄소 감축 기술, 데이터 분석, 금융 솔루션 등을 제공함으로써 기후 취약국의 회복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으며, 이러한 협력이 현지 주민의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포럼을 마무리하며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오준 이사장은 “기후 변화는 특히 미래 세대와 취약계층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기는 문제”라며 “아이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스스로 열어 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시민사회, 정부, 기업이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오 이사장은 세이브더칠드런이 앞으로도 아동 권리와 기후 정의를 접목한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이번 기후정의포럼은 국제NGO와 정부, 국제기구, 학계, 민간 부문이 한자리에 모여 기후 위기 대응을 ‘기후 정의’라는 공통의 기준으로 재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장 사례와 정책 제안이 함께 논의된 만큼, 향후 ODA 사업과 국제협력 전략에 기후 정의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논의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