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화려한 수사로 진실을 덮을 수 있고, 독재자는 총칼로 입을 막을 수 있지만, 마른 땅은 침묵으로 가장 웅변적인 비명을 지른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이란의 비극은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다. 그것은 오만했던 인간 권력이 자연이라는 절대적인 심판관 앞에서 어떻게 무릎 꿇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하고도 서글픈 서사시이다.
2025년 11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닥친 '제로 데이(Day Zero)'. 그것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수도의 수자원 고갈을 시인했을 때, 그것은 한 국가의 행정적 실패를 넘어 문명의 붕괴를 알리는 조종(弔鐘)과도 같았다.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 대신 쉭쉭 거리는 공기 소리만 들리는 그 적막 속에서, 천만 명의 시민들은 깨달았다. 도시의 혈관이 말라버렸음을.
도미노의 시작: 어둠이 내린 도시
물이 사라지자, 빛도 사라졌다. 이것은 우리가 간과했던 현대 문명의 취약한 연결고리다. 댐의 수위가 바닥을 드러내자 거대한 터빈들이 멈춰 섰다. 전체 전력의 10%를 담당하던 수력 발전 중단은 곧장 전력망의 붕괴로 이어졌다. 전기가 끊기니 물을 끌어 올릴 펌프가 멈췄고, 도시는 암흑과 갈증이라는 이중의 공포에 갇혔다.
상상해 보라. 수술실의 조명이 꺼지고, 인공호흡기가 멈추는 병원의 풍경을. 물이 없어 소독조차 할 수 없는 의료 현장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세균의 온상으로 변했다. 거리에는 냉장 시설이 멈춰 썩어가는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테헤란의 가을은 그렇게 시들어갔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탐욕의 설계자들: '물 마피아'의 그림자
그러나, 이 재앙을 단순히 하늘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이 비극의 이면에는 '워터 마피아'라 불리는 검은 손이 존재한다.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와 결탁한 이들은 물을 생명이 아닌 돈으로 보았다. 그들은 과학적 타당성 따위는 무시한 채 600개가 넘는 댐을 지어 올렸다. 흐르는 강물을 막아 세운 그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들은 국민을 위한 저수지가 아니라, 그들의 주머니를 채울 탐욕의 금고였다.
특히, 이스파한의 비극은 뼈아프다. 도시를 가로지르던 생명의 젖줄, ‘자얀데’ 강은 왜 말라버렸는가? 가뭄 때문이 아니다. 강물은 상류에서 납치당했다.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거대한 제철소와 공장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물을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가 흘려야 할 땀방울 대신 용광로를 식히는 데 쓰인 그 물은, 권력이 어떻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약자의 생존권을 짓밟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고트반드 댐'의 사례다. 소금산 위에 댐을 짓는, 공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짓을 그들은 저질렀다. 그 결과 댐은 거대한 소금물 탱크가 되었고, 방류된 소금물은 하류의 비옥한 농토를 영원한 불모지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이것은 국토를 향한 테러였다.
"나는 목마르다": 피로 얼룩진 외침
2021년 7월, 후제스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터져 나온 "나는 목마르다(I am thirsty)"라는 외침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다. 살려달라는 비명이었다. 하지만, 당신 이란 정권은 그들에게 물 대신 총알을 주었다. 17세 소년의 몸을 뚫고 지나간 실탄은 이 정권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임을 명백히 밝혔다.
그해 11월, 이스파한의 마른 강바닥에서 농부들은 평화롭게 물을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산탄총이었다. 수십 명의 농부가 눈을 잃었다.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아온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정권의 잔혹한 경고였으리라. "말라버린 강을 보려 하지 마라. 우리의 탐욕을 직시하지 마라." 그러나, 그들이 쏜 총알은 농부의 눈뿐만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마저 뚫어버렸다.
가라앉는 땅, 무너지는 미래
이제 이란은 물만 잃은 것이 아니다. 땅 자체가 꺼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래 세대가 마셔야 할 지하수까지 빨대 꽂듯 뽑아 쓴 대가는 혹독했다. 지하수가 빠져나간 빈 곳을 견디지 못한 땅이 주저앉고 있는 거다.
수도 테헤란의 지반은 매년 끔찍한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건물 벽에 금이 가고, 도로가 갈라지는 것은 전조에 불과하다. 땅속 가스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서 천만 시민이 살아가고 있다. 한때 중동의 진주였던 우르미아 호수는 이제 소금 사막이 되어, 죽음의 소금 먼지를 바람에 실어 보내고 있다. 이것은 영토의 상실이다. 적군에게 빼앗긴 땅은 되찾을 수 있지만, 스스로 무너져 내린 땅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나비효과: 푸틴의 악몽이 된 테헤란
이 비극은 이란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푸틴에게 이란의 붕괴는 악몽 그 자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하늘을 뒤덮던 샤헤드 드론, 그 살상 무기의 공급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 코가 석 자인 이란 정권이 언제까지 러시아를 도울 수 있겠는가. 땅이 꺼지고 국민이 봉기하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병참 기지가 될 수 없다. 물 부족이 초래한 나비효과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까지 갉아먹고 있다. 독재자들의 카르텔은 그렇게 물 한 방울 앞에서 무력하게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자연은 타협하지 않는다
테헤란의 '제로 데이'는 우리 인류에게 던지는 서늘한 질문이다. 정권은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었다. 국제 사회의 제재도 요리조리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은 속일 수 없었다. 자연에는 뇌물도, 협박도, ‘프로파간다(선전)’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 이란 대통령이 고려한다는 '강제 대피'는, 사실상 항복 선언이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바벨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다. 물이 없는 곳에 문명은 없다. 정의가 메마른 곳에 평화가 없듯이.
우리는 이란의 비극을 보며 전율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한 국가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의 목마름을 외면할 때, 권력의 배를 불리기 위해 강물의 흐름을 거스를 때, 그 끝은 정권의 몰락을 넘어 국토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마른 수도꼭지 앞에서 절망하는 테헤란의 시민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이, 아직 물이 흐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뼈아픈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 생명은, 그리고 정의는, 결코 독점될 수 없는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