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피어난 1,010개의 정원, 시민 일상이 바뀌다

회색 도시의 숨통을 틔우다: ‘5분 정원도시’의 등장 배경

1,010개의 정원, 숫자 이상의 의미

정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다: 일상 속 행복의 사회적 가치

도시는 언제부터 숨차기 시작했을까. 회색빛 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 눈길이 머물 틈 없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작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서울 곳곳에 초록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시청 앞 한뼘정원, 세종대로의 사람숲길, 그리고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매력가든. 퇴근길, 누군가는 그 길에서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는다. 사진=서울시 제공 주요 유형별 조성 사례 고산자로 한뼘정원(성동구)

 

 

회색 도시의 숨통을 틔우다: ‘5분 정원도시’의 시작

 

 

도시는 언제부터 숨차기 시작했을까. 회색빛 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 눈길이 머물 틈 없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작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서울 곳곳에 초록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시청 앞 한뼘정원, 세종대로의 사람숲길, 그리고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매력가든. 퇴근길, 누군가는 그 길에서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는다.

 

 

서울시는 지난 3년간 ‘걸어서 5분 안에 정원을 만날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매력가든‧동행가든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2024년, 목표보다 1년이나 앞서 1,010개의 정원이 완성됐다. 계획된 1,007개보다 3곳이 많다. 숫자는 작아 보여도, 그 사이에는 도시의 숨결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숫자가 말하지 못한 것들

 

 

1,010개의 정원이 어떤 의미일까. 면적으로만 보면 68만㎡, 여의도공원의 세 배, 축구장 95개 크기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수치 너머에 있다. 이 정원들은 단지 꽃과 나무가 심긴 공간이 아니다. 서울의 버려진 땅, 인공 포장으로 덮였던 공간을 다시 살아 숨 쉬게 한 흔적이다. 절반 가까이는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새로 만든 녹지다.

 

 

그 덕분에 서울은 1년에 이산화탄소 469톤을 덜 배출하게 됐다. 한 도시가,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봄에는 철쭉이, 여름에는 수생식물이, 가을에는 단풍이 시민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행정도 변했다. 처음엔 서울시 단독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25개 자치구 모두가 함께 참여했다. ‘서울시 73%, 자치구 27%’라는 협력 구조는 정책이 시민에게 닿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정원은 단지 식물이 아니다

 

 

정원을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동행가든은 복지시설, 병원, 요양원 같은 곳에 조성됐다. 병실 창문 너머로 꽃이 피고, 바람이 드나드는 풍경은 누군가에게 ‘회복’의 의미가 된다. 서울의 정원 1,010곳 중에는 공원 안에 다시 만들어진 공간 435곳, 도로변의 작은 가로정원 277곳, 하천 따라 이어지는 128개의 정원이 있다. 이동 중에도, 쉬는 중에도, 사람들은 무심히 자연을 스친다.

 

 

이 정원들은 시민의 일상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걷는 사람이 늘었고,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와 산책하는 부모, 벤치에서 책을 읽는 노인, 하천 옆에서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까지. 도시의 리듬이 달라졌다. 어쩌면, 도시가 인간의 속도에 맞춰가기 시작한 첫 번째 장면일지도 모른다.

 

 

서울이 만드는 새로운 도시의 기준

 

 

‘5분 정원도시’는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시민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도시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이유는 이제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사람의 행복에서 비롯된다. 런던의 ‘그린루프’, 파리의 ‘그린벨트’, 싱가포르의 ‘가든시티’가 도시의 브랜드가 되었듯, 서울의 정원도시는 ‘삶의 질’이라는 도시 철학을 내세운다. 녹색은 트렌드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가 되었다.

 

 

이수연 서울시 정원도시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매력가든과 동행가든은 단순히 정원을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회복하는 도시정책입니다.” 결국 서울의 이 실험은 하나의 모델이 된다. 도시의 회복력, 시민의 관계, 기후 대응력까지 아우르는 ‘휴먼 생태 도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도시가 다시 사람을 품을 때

 

 

정원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조용히, 꾸준히 도시를 바꾼다. 1,010개의 정원은 거대한 도심의 틈새에 ‘쉼’을 심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시 마주 보고, 걷고, 웃는다.서울의 5분 정원도시는 그래서 단순한 공간의 변화가 아니다. 도시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서울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다.

 

 

작성 2025.11.26 15:21 수정 2025.11.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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