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학 박사가 논문 대신 '생존 감각'을 외치는 이유
경영의 유일한 정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장? 혁신? 시장 점유율? 저는 한때 그 답이 경영학 교과서 안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28년간 작은 기업의 대표로 현장을 누비면서도, 경영학 박사로서 이론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제 머릿속은 언제나 KPI, STP 전략, 조직행동론 같은 명쾌한 공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위기는 단 한 번도 교과서의 공식대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믿었던 거래처가 등을 돌리고, 월급날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의 공포와 막막함 앞에서, 제 머릿속의 이론들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습니다.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때 필요한 건 논문이 아니었다. '살아남는 감각'이었다."
이 글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이론의 정점에서 처절한 현실로 내려와 온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생존의 지혜'에 관한 기록입니다. 교과서를 덮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숫자가 아닌 사람에게서, 시스템이 아닌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발견한 진짜 경영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지금껏 믿어온 경영 상식은 과연 안전합니까?
교과서가 만든 위험한 신화: 현장에서 산산이 부서진 세 가지 공식
경영학 교과서에서 배운 공식들은 논리정연하고 명쾌합니다. 하지만 그 명쾌함이 작은 기업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신화’가 될 수 있습니다. 자원도, 시간도, 사람도 부족한 작은 조직에게 교과서적 접근은 때로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겪으며 산산이 부서졌던 세 가지 위험한 신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화 1: 이익이 왕이다 (The Myth of Profit)
교과서의 가르침: "기업의 최종 목표는 이익 극대화이며, 손익계산서는 경영 성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다."
현실의 배신: 사업 초창기, 제 회사의 손익계산서는 매달 붉은 흑자를 기록하며 순항하는 듯 보였습니다. 매출 그래프는 치솟았고 거래처는 늘었습니다. 저는 그 숫자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월급날 아침, 회계 담당자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대표님, 이번 달 매출은 1억이 넘지만, 아직 현금으로 들어온 돈이 부족해 직원 급여를 지급하기 어렵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장부 위에서 춤추던 화려한 이익이 저를 살려주지 못했습니다. 저를 살리는 것은 ‘예정된 돈’이 아니라 ‘통장에 찍힌 돈’이었습니다. ‘흑자 도산’이라는 단어가 책 속의 이론이 아닌, 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이익은 환상이고, 현금이 진실이다.
신화 2: 전략이 브랜드를 정의한다 (The Myth of Strategy)
교과서의 가르침: "STP 분석과 같은 정교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고객의 마음속에 우리 브랜드의 위치(Positioning)를 명확히 설계해야 한다."
현실의 배신: 저는 밤을 새워 시장을 분석하고, 슬로건과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럴싸한 브로셔까지 찍어냈습니다. 수백 쪽짜리 전략 보고서 못지않은 기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단골 고객에게 "우리 회사가 어떤 곳 같아요?"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제 모든 전략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냥… 사장님 말이 잘 통하는 데요."
허탈했습니다. 고객은 제가 만든 전략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인상’으로 우리 회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포지셔닝은 회의실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원의 전화 응대 태도 하나가, 대표의 소통 방식 하나가 그 어떤 슬로건보다 강력한 브랜드의 본질이었습니다.
신화 3: 시스템이 조직을 관리한다 (The Myth of The System)
교과서의 가르침: "명확한 역할 분담, 성과 지표(KPI), 보고 체계 등 잘 설계된 시스템이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현실의 배신: 회사가 커지면서 출퇴근 체크, KPI 등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제야 진짜 회사 같네’라며 뿌듯해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사무실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한번은 팀의 성과는 괜찮았지만, 공기 전체에 습기가 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뉴얼 대신 커피 한 잔을 들고 물었습니다. "요즘 어때?"
그 한마디에 팀원 하나의 감정적 번아웃이 드러났고, 그 기류가 팀 전체의 활력을 순식간에 끌어내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조직은 차가운 구조가 아닌, 따뜻한 기류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직원은 관리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함께 흘러가야 할 ‘에너지’였습니다.
이처럼 교과서의 신화들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 저는 비로소 생존의 진짜 본질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의 본질 '감각 경영': 숫자를 넘어 흐름을 읽는 기술
사람들은 제 경영 방식을 보고 ‘꼼수’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편법이 아닙니다. 28년간의 생존 과정에서 실패하고 망해본 경험을 통해 온몸으로 체득한 ‘본질’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가 일상인 작은 조직에게, 정답을 말하는 기술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감각 경영’은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감각 경영'이란, 엑셀 시트의 숫자를 넘어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데이터 너머의 살아있는 느낌을, 조직에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을 포착하는 기술입니다.
이 감각을 날카롭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훈련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어느 날 월말 보고서를 받아보고서야 한 달간 고객 클레임 환불이 3배나 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뼈아픈 경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리포트가 나왔을 땐, 이미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매일 아침 10분 스캔'입니다. 매일 아침, 단 10분만 투자해 아래 네 가지 살아있는 지표를 직접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사의 맥박을 매일 직접 짚어보는 ‘경영 심전도’와 같습니다.
어제의 매출: 우리 서비스가 시장에서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가?
통장에 남은 현금: 오늘 우리가 숨 쉴 산소는 충분한가?
고객의 불만: 어디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가?
새로운 잠재 고객: 내일의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단순한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어, 이거 좀 이상한데?’ 하는 위험 신호를 감지하게 됩니다. 경영의 핵심은 1년에 한 번 세우는 거창한 계획이 아닙니다. 매일의 작은 변화에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하느냐, 즉 ‘반응의 타이밍’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훈련'할 것인가?
제가 28년의 현장에서 배운 것은 결국 경영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의 축적이 아닌, 감각의 훈련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통제에서 감각으로
성장에서 생존으로
시스템에서 사람과 에너지로
사업은 한 번의 홈런으로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수없이 헛스윙하고 넘어져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 다음 타석에 들어서는 ‘견디는 기술’이 전부인 마라톤과 같습니다. 살아남은 자만이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내일도 이 경기장에서 있기 위해 오늘 무엇을 훈련해야 하는지를요.
당신의 생존 루틴은 무엇입니까? 그 답을 찾는 과정이 곧 당신만의 위대한 경영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