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거든(Gurdon) 연구소의 아짐 수라니(Azim Surani) 교수 연구팀이 정자와 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인간 줄기세포만으로 인공 배아 모델을 만들어 그 안에서 혈액세포가 형성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관찰했다. 이 획기적인 연구는 백혈병이나 선천성 혈액 질환 환자에게 맞춤형 혈액을 공급할 수 있는 재생의학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10월 14일 국제 학술지 셀 리포츠에 게재됐다.
헤마토이드(Hematoid)-스스로 피를 만드는 인공 배아
연구팀은 인간 배아 줄기세포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 임신 3~4주 차의 인간 배아 구조를 모사한 3차원 배양체를 제작했다. 이 모델은 헤마토이드 라고 명명됐다. 배양 8일째에 심장세포가 박동을 시작했고, 13일째에는 혈액 덩어리가 형성되며 조혈 줄기세포가 출현했다. 이 세포들은 적혈구·백혈구·림프구 등 다양한 혈액 세포로 분화할 수 있었으며, 골수나 제대혈에서 얻은 조혈세포와 매우 유사한 생리적 특성을 보였다.
외부 자극 없이 스스로 조직되는 자가 조직화 메커니즘
기존의 배양 연구와 달리, 수라니 교수팀은 외부 단백질 성장 인자를 주입하지 않았다. 대신 줄기세포가 스스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배아 형태로 자라나는 ‘자가 조직화’ 원리를 이용했다. 이 접근법 덕분에, 세포들이 인간 초기 발달 과정을 자연스럽게 재현하면서도 비윤리적 실험 논란을 피할 수 있었다. 헤마토이드는 태반이나 난황 등 생명 유지 기관이 없고, 뇌 조직도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로 성장할 수 없다.

환자 맞춤형 혈액 생산의 전환점
이 기술은 인간의 생명 초기에서 혈액 형성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규명할 강력한 도구 라며, 수라니 교수는 향후 환자 맞춤형 혈액을 생산하고, 희귀 혈액 질환을 치료하는 데 결정적 전기를 마련할 것 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연구팀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① 백혈병과 골수 부전증의 발병 기전 연구,
② 유전자 교정형 맞춤 혈액 생산,
③ 신약 개발 및 약물 독성 평가 모델 등으로의 확장을 준비 중이다.
이 연구는 인간 배아 복제나 인공 인간 개발이 아니라, 생명의 원리를 안전하게 재현하는 과학적 모델 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각국의 생명윤리 기준에 따라, 인공 배아 모델은 뇌·신경계 발달이 없는 상태에서만 연구가 허용되며, 이번 연구 역시 국제 줄기세포학회의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했다.
이제 인간의 피는 세포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가조직화의 결과물로 재정의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의 이 실험은 생명을 복제하지 않고, 생명을 이해하는 과학 으로 재생의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