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코뿔소와 아기 펭귄이 건넌 밤
— 루리의 『긴긴밤』이 남긴 존재의 시학
2021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루리의 『긴긴밤』은 단순히 동물의 우정을 그린 동화가 아니다.
이 책은 ‘지구상 마지막 코뿔소’라는 설정 속에서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적 서사이자,
모든 사라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이야기이다.
마지막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의 여정은
멸종과 상실, 그리고 사랑의 연대가 어떻게 희망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루리는 단순히 감동을 전하는 작가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을 문학적 언어로 증언하는 시인이다.
『긴긴밤』의 세계는 한편의 잔혹동화처럼 시작된다.
노든은 코끼리 무리 속에서 자라난 ‘뿔 없는 코뿔소’이고,
어린 펭귄은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생명’이다.
이 둘은 우연처럼 만났지만, 그 만남은 곧 서로의 삶을 구원하는 사건이 된다.
노든은 펭귄에게 ‘안전한 바다’를 찾아주기 위해 낯선 길을 떠나고,
펭귄은 노든의 마지막 밤을 지켜주는 존재가 된다.
이 여정은 곧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의 세계를 밝히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긴긴밤을 건너야 한다.
루리의 서사는 단순한 감정의 호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동물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문명을 고발하고, ‘사라짐의 시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촉구한다.
코뿔소 노든은 ‘마지막 존재’로서의 고독을 감내하고,
펭귄은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를 향해 날아드는 생명의 본능을 보여 준다.
이 둘이 함께 보낸 긴긴밤은 곧 ‘연대의 은유’이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견뎌내는 그 밤이야말로 인간이 잊고 있던 ‘우리’의 본질이다.
『긴긴밤』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지만, 어른을 위한 위로문학이기도 하다.
루리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더러운 웅덩이에도 별은 뜬다”고 말한다.
그 별은 희망이 아니라, ‘함께 견딘 기억’이다.
노든이 펭귄을 품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장면은, 상실을 견디며 서로를 지탱하는 인간의 숙명을 상징한다.
결국 루리의 『긴긴밤』은 ‘존재의 시학’으로 완성된다.
모든 생명이 서로를 기억하고,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사랑의 기록.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남긴 가장 깊은 울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