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부진 10년, 드디어 속도를 내다
“언제쯤 우리 동네에도 새 아파트가 들어서려나.” 서울 노원구 상계5동 주민들에게는 지난 수년간 이 말이 하나의 인사처럼 통했다. 재개발이 논의된 지는 오래였지만, 추진위원회 구성 문제와 주민 간 갈등, 그리고 행정 절차의 복잡함으로 사업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 1차 후보지’로 상계5동을 선정하면서 정체되어 있던 지역 정비사업이 드디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에는 ‘추진위원회’ 단계를 생략하고 조합 직접 설립 방식을 도입한 것이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행정의 속도와 주민의 참여가 맞물린 새로운 실험이 본격화된 셈이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이제는 행정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뛰는 방식으로 전환됐다”고 전했다.
이제 상계동 154-3 일대를 중심으로, 약 4,591세대 규모의 초대형 주거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 정비사업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에 속하며, 총 6억 원 이상의 공공지원금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 지역은 오랜 기간 노후주거지로 분류되며 주거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공공과 주민이 함께 설계하는 협력형 도시혁신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업의 의미는 더욱 크다.
추진위원회 없는 ‘직접설립형’ 재개발의 실험
상계5동 재개발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조합 직접 설립’ 방식의 대표적인 파일럿 사례다. 기존에는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했다. 추진위가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조합을 설립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 비공식 회계 문제, 위법 논란 등이 잦았고, 이로 인해 수년간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근거로, ‘공공지원 조합 직접 설립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토지 등 소유자 과반의 동의만 있으면 추진위원회 없이 바로 조합 설립이 가능하다. 행정 절차가 단축되고, 불필요한 분쟁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상계5동에서는 서울시와 노원구가 행정적 실무를 직접 지원하며 주민협의체와 함께 조합 창립총회를 준비 중이다. 기존 재개발 방식이 ‘민간 중심’이었다면, 이번 모델은 ‘공공과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형 구조로 진화했다.
이 변화의 의미는 단순히 속도만이 아니다.
사업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주민의 의사 반영률을 높이는 제도적 실험이다. 조합이 공공의 행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주민이 실질적인 주체로 참여하는 ‘하이브리드형 재개발’ 모델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지원 직접설립 방식이 정착되면, 서울의 노후 주거지 재정비 패러다임이 크게 바뀔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6억 원의 공공지원, 주민이 주도하는 행정혁신
이번 상계5동 재개발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서울시 최대 규모의 공공지원금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총 6억 1천250만 원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으며, 이는 조합 설립 지원뿐 아니라 주민협의체 운영, 분담금 산정, 정비사업 전문관리 용역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노원구청은 이를 ‘공공지원형 재개발의 모범 사례’로 육성하기 위해 전담 행정지원반을 가동했다. 즉, 구청과 주민협의체, 서울시가 ‘삼각 협력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구는 주민이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서울시는 사업의 공공성을 확보하며, 주민협의체는 실질적인 의견 수렴 창구 역할을 맡는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주민설명회에서 “이번 재개발이 주민의 숙원을 풀고 노원구의 도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모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업 대상지는 총 면적 216,364㎡(약 6만5천 평)으로, 최고 39층, 26개 동 규모의 초대형 단지로 계획되어 있다. 완공 시점에는 중계·상계 지역을 잇는 북부권 핵심 주거벨트의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인근에 경춘선숲길, 상계역, 노원구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등이 자리해 있어 교육·교통·생활 인프라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 주민들은 “이번 재개발이 제대로 추진되면 낙후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新)상계 주거중심지’로 거듭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공공과 주민이 함께 만드는 도시 혁신의 현장
상계5동 재개발은 단순히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일이 아니다. 이 사업은 ‘공공과 주민이 함께 만드는 도시 혁신 모델’의 첫 사례이자, 서울형 재개발 제도의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프로젝트다.
서울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행정 지원이 단순한 ‘감독’이 아닌 ‘동반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이는 재개발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재개발은 흔히 ‘투기’나 ‘이익 분배’ 문제로 비춰지며 지역 공동체를 분열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상계5동의 모델은 공공 지원 + 주민 참여 + 투명 행정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서울 전역의 노후 주거지 재정비 사업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행정의 속도를 올리면서도 주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상계5동의 실험은 도시정비정책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공은 주민과 행정 모두에게 넘어갔다. 상계5동이 ‘공공과 주민이 함께 만든 도시혁신의 상징’으로 완성될 수 있을지, 그 답은 협력의 지속성에 달려 있다.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서 시작된 이 실험이 머지않아 대한민국 재개발의 새로운 교본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