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동 주민자치프로그램 미술교실 전시회

「도산골에 꽃이 피었습니다」 개최

[사진='도산골에 꽃이 피었습니다' 작품 전시 중인 송정작은미술관]

 

도산동의 조용한 골목 속, 오래된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작은 길을 걸어 들어가면, 어느 순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색이 눈에 들어온다. 꽃이다. 

활짝 핀 꽃송이가 아니라, 오래된 마음 위에 천천히 내려앉아 피어난, 사람의 손끝이 담긴 꽃들이다. 이번 전시는 도산동 주민자치프로그램 미술교실에서 함께 배우고 그려온 수강생들의 작품 전시회 「도산골에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전시는 2025년 10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광주 송정작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이 전시는 ‘꽃’이라는 소재를 중심에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꽃은 식물학적인 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서 피어난 감정과 기억의 꽃이다. 강경지 강사와 함께 그림을 그려 온 수강생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오래 간직하거나 혹은 잊고 지내던 따뜻함을 하나씩 꺼내어, 붓과 색을 통해 캔버스 위에 피워냈다. 익숙한 골목과 낡은 돌담, 오래된 마을의 정취 속에서 발견한 꽃송이, 어린 시절 들판에서 바람과 함께 피어난 들꽃, 누군가를 떠올리며 마음속에서 피어난 꽃. 작품 속에는 개인의 이야기와 감성이 조용한 결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강경지 강사는 이번 전시를 “결과물의 전시”가 아니라, 함께 웃고 배우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의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말했다. “꽃은 잠깐 피었다가 지지만, 그 순간은 길게 기억됩니다. 수강생 여러분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멈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라보고, 느끼고, 곱씹고, 표현하는 것. 이 전시는 그 과정의 한 장면입니다.”

 

[사진='도산골에 꽃이 피었습니다' 작품 전시 중인 송정작은미술관]

 

실제로 미술교실의 수업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만 머물지 않았다. 빠르게 흐르는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수강생들은 서로의 붓놀림을 응원하고, 같은 꽃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감정의 결을 발견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그 과정 속에서 꽃은 단순한 소재가 아닌 서로에게 조용히 건네는 마음의 언어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이 참여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이가 있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접하기까지 긴 세월을 돌아온 70대 수강생 한연자 씨다.


그는 이번 전시에 ‘기다림’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한 소감에 대해서 이렇게 전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저는 한참 동안 나무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요. 분홍빛이 포개져 흐드러지게 피어난 나무는 마치 오래된 감정이 한꺼번에 피어난 순간과 같았습니다.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여인은 과거의 저이기도 하고, 지금의 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을까요?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나 자신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을까요?”

 

한연자 수강생은 그림을 배우기 전에는, 마음속의 감정들을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묻어두고 살았다.
그러나 꽃잎 하나를 칠하고, 나무의 굵은 줄기를 천천히 따라 그리면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시간들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기다림’은 슬픔도 아니고, 외로움만도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멈춰 서서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큰 선물입니다.”

 

[사진=전시회에 참가중인 한연자 수강생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봄은 언제나 먼저 찾아오지 않는다.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봄은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나무 아래 서 있는 그녀는 외롭지 않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이번 전시가 단순한 취미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여정을 기록하는 한 장면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꽃을 그린다는 행위는 때로는 하나의 기도처럼 조용하고, 때로는 오래 묵혀둔 감정을 다독이는 순간처럼 깊다.


그림 속 꽃들은 모두 빠르게 소비되는 보통의 이미지들이 아니라, 천천히 만들어진 마음의 온기들이다.

전시가 열리는 송정작은미술관은 오래된 도시 풍경 사이에서 주민들의 문화 활동과 창작을 품어온 공간으로, 이번 전시의 분위기와 잘 맞닿아 있다.


작품들은 공간의 벽면에 차분히 자리하며, 전시장을 찾는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한 송이씩 바라보도록 이끈다. 전시장은 크지 않지만, 그 속에서 관람객은 오히려 마음의 숨을 고르게 된다. 그림 앞에서 한동안 말을 멈추고 바라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이번 전시는 화려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크고 강렬한 메시지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 속으로 스며드는 울림을 남긴다.

도산골에 피어난 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따뜻한 마음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리고 이 전시는 그 꽃이 누군가의 하루에도 작은 향기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리고 있다.

 

천천히 걸어 천천히 바라볼 것.
그 속에서 어쩌면, 당신 마음에도 꽃 한 송이가 피어날지 모른다.
도산골의 꽃들은 오늘도 고요히 그 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김유미 문화부 기자 yum1024@daum.net
작성 2025.11.12 09:15 수정 2025.11.1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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