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위로할 일도 늘어납니다. 수많은 일을 겪었기에 위로하기도 수월해지리라 기대하지만, 나이에 비례해 지혜가 늘어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췌장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항암 효과가 없어 ‘무섭고 슬프다’고 하는 지인에게, 아내가 침대에서 떨어진 이후로 기억력이 급격히 나빠지고 자꾸 낙상해서 아내 곁에 24시간 대기해야 하는데 자신도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미국인 친구에게, 오래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대인 기피증이 생긴 동료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마음이 캄캄해지고 목구멍이 죄어 옵니다.
어떤 말을 해도 위로는커녕 공감 근처에도 가기 힘들 것 같아, 그저 눈을 꼭 감아 버리다가, 침묵으로 회피하는 자신을 자책하다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용 있을까, 다시 내뱉으려는 말을 집어삼킵니다. 결국 ‘힘드시죠?’ ‘그래도 힘 내세요.’라는 판에 박힌 말로 마무리를 하곤 ‘기도 드릴게요’ 소심하게 덧붙입니다.
사주 명리학을 공부할 때, ‘일이 안 풀릴 때, 6개월만 참으면 좋아질 거예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이유가 상황이나 기운은 고정됨이 없이 변하므로 짧으면 한 계절, 보통 두 계절이 지나면 국면이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라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 나름이지 말기 암 환자나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에겐 소용없는 위로지요. 그러다 우연히 책에서 ‘Pray; don’t pout.(기도하라, 투덜거리지 말고)‘라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청소부 밥’으로 번역된 ‘Janitor’라는 책에서 회사 일로 진퇴양난에 빠져 괴로워하는 CEO에게 밥이 건네는 말입니다. 회사 일로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해결 방법이 아니라 기도나 하라니 김이 좀 빠졌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은 후 일상에서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행이나 큰일을 당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를 쓴 융 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는 생애 주기에 따른 정체성의 변동을 바라보는 방법 중 하나로 정체성이 갖는 다양한 중심축을 분류하고 있는데, 마지막 축은 신 또는 우주라고 합니다.
‘네 번째 정체성인 유한성의 중심축은 ’자기-신‘ 또는 ’자기-우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축은 개인을 초월하는 우주의 신비로 구성된다. 우주의 드라마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맺지 않으면 인간은 덧없고 피상적이며 무미건조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누구나 유한성을 맞닥뜨리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럴 때 대게 원망이 먼저 시작됩니다. 나의 좋은 의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밀려온 시련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허망하고 무기력해지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 자궁 속에서 우주의 리듬에 따라 호흡했던 별의 자손임을 때때로 상기해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첫울음을 울 때 우주의 시공간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각인되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나 고통이 오면 내 탓,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초월한 신비와 조우하는 좋은 기회라 여기면 좋겠습니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의 죽음과 삶의 궤적은 현상계를 초월한 우주의 섭리와 맞닿아 있기에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눈앞의 시련이 당장 끝나지 않더라도 시련을 한 차원 높은 곳에서 관조할 수 있어 혼란과 두려움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요. 모든 편견이나 사견에서 벗어나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은 ‘불평하지 않고 나를 내려놓은 채 기도하는’ 마음에서 나오니까요.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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