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움직이는 수니와 시아의 갈등: 분열의 심연

-중동의 복잡다단한 갈등을 이해하는 열쇠는 이슬람 내부의 가장 근본적인 분열, 즉, '수니'와 '시아'의 갈등에 있다.

-'카르발라의 비극'은 시아파 무슬림들에게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매년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며 정체성의 핵심이다.

-중동은 이란(시아파)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의 거대한 대리전 무대가 되었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오늘날 세계가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단일체를 상정할 때, 종종 그 심장부에 자리한 깊고 오래된 균열을 간과하곤 한다. 중동의 복잡다단한 갈등을 이해하는 열쇠는 서구와의 대립 이전에, 이슬람 내부의 가장 근본적인 분열, 즉, '수니(Sunni)'와 '시아(Shia)'의 갈등에 있다. 이는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 파열에서 시작되어, 피의 순교를 거치며 신학적, 문화적 심연으로 굳어진 비극이다.

 

현재, 전 세계 무슬림의 약 85~90%는 수니파이며, 10~15%가 시아파이다. 이 압도적인 수적 차이로 인해 시아파는 종종 '거대한 수니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으로 묘사된다. 이들의 분열은 단순한 교리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과 역사

의식, 그리고 권력의 정통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된다.

 

모든 비극의 시작: 정치적 후계자 논쟁

 

분열의 씨앗은 7세기 초,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죽음 직후에 뿌려졌다. 문제는 '누가 공동체(움마)를 이끌 것인가'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질문이었다.

 

다수의 무슬림(훗날 '수니파')은 공동체의 합의와 선출을 통해 무함마드의 오랜 동료였던 아부 바크르를 초대 칼리프(계승자)로 추대했다. 이들은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관행인 '순나(Sunnah)'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의미에서 '수니'가 되었다.

 

반면, 소수의 무슬림(훗날 '시아파')은 이에 반대했다. 그들은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의 혈통을 통해 신성한 지혜가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들이 유일한 정통 후계자로 인정한 인물은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였다. '시아'라는 이름 자체가 '알리를 따르는 무리(Shi'at' Ali)'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시작은 '선출이냐 혈통이냐'는 정치적 견해의 차이였다. 그러나 이 정치적 균열은 곧 피로써 굳어지게 된다.

 

아물지 않는 상처: 카르발라의 비극

 

알리는 결국 4대 칼리프가 되었으나 암살당했고, 그의 아들들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시아파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확립한 사건은 A.D. 680년, 지금의 이라크 땅 '카르발라'에서 일어났다.

 

알리의 둘째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이 당시 수니파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후세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소수의 추종자들은 며칠간의 포위 끝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이 '카르발라의 비극'은 시아파 무슬림들에게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매년 '아슈라'라는 추모 기간을 통해 재현되는,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며 정체성의 핵심이다. 이들은 이날 금식하고, 가슴을 치며, 때로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며(자해) 후세인의 고통을 되새긴다. 이는 순교와 저항,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의로운 분노라는 시아파의 핵심 정서를 형성했다. 이 피의 기억이 바로 두 종파가 다시는 하나 될 수 없는 정서적, 역사적 뿌리이다.

 

두 개의 길, 두 개의 신앙

 

카르발라의 트라우마와 이어진 수백 년간의 박해 속에서, 소수파였던 시아파는 수니파와는 확연히 다른 독자적인 신앙 체계를 발전시켰다.

 

시아파: 순교와 기다림의 신앙

 

이맘(Imam) 사상: 시아파 신앙의 핵심이다. 수니파에게 '이맘'이 단순히 예배를 인도하는 종교 지도자인 반면, 시아파에게 '이맘'은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은 신성한 지도자이다. 이들은 신의 선택을 받았으며, 꾸란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무오류의 존재'로 여겨진다.

 

마흐디(Mahdi) 사상: 시아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12이맘파'는 알리로부터 이어진 12번째 이맘이 어린 나이에 사라졌으며, 죽지 않고 '은둔'해 있다고 믿는다. 그는 마지막 날에 구세주, 즉 '마흐디'로 재림하여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세울 것이다. 이 '숨은 이맘'과 재림 사상은 박해받던 시아파에게 희망의 근원이 되었다.

 

타키야(Taqiya): '믿음의 위장'을 의미한다. 생명이나 재산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경우, 자신의 시아 신앙을 일시적으로 숨기거나 부인하는 것을 허용하는 교리이다. 이는 소수파로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자기방어 전략이었다.

 

성지 순례: 이들에게는 메카, 메디나 순례만큼이나 '카르발라'의 이맘 후세인 무덤 순례가 중요하며 신성한 의무로 간주된다.

 

수니파: 순나와 공동체의 신앙

 

칼리프 제도: 무함마드 이후 4대 정통 칼리프(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를 모두 정통 계승자로 인정한다. 그 이후의 칼리프들은 비록 세습 왕조였지만, 이슬람 공동체를 수호하는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정통성을 부여받았다.

 

교리의 근원: 이들의 신앙은 꾸란과 더불어,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순나(하디스)'에 절대적인 기반을 둔다.

 

이맘의 역할: 시아파와 달리 '이맘'에게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맘은 존경받는 학자이거나 예배 인도자일 뿐, 무오류의 존재가 아니다.

 

이데올로기 무기: '카피르'라는 낙인
 

두 종파의 갈등을 폭발적으로 만드는 가장 위험한 개념이 바로 '카피르(Kafir)'이다. 카피르는 본래 '신의 은총을 덮어버린 자' 즉, '불신자'를 의미하는 아랍어이다. 이슬람에서 이는 지옥 형벌을 받을 중죄인을 뜻하는, 가장 모욕적이고 심각한 용어이다.

 

문제는 이슬람 내부에서 발생한다. 일부 극단주의 수니파(특히 사우디의 와하비즘이나 IS와 같은 살라피 지하디스트)는 시아파 무슬림들을 '카피르'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시아파가 이맘들의 무덤을 순례하고 그들을 신성시하는 행위가, 유일신 알라 외에 다른 숭배 대상을 두는 '쉬르크(다신숭배)'라고 비난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5번의 기도를 3번으로 합쳐서 드리는 관행 등, 수니파의 엄격한 율법(육신오행)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 무슬림이 다른 무슬림을 '카피르'로 선언하는 순간, 모든 비극이 정당화된다. IS와 같은 급진 수니파 세력이 시아파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할 수 있었던 사상적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의 눈에 시아파는 이단이 아니라, 처단해야 할 '불신자'였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리전: 이념과 권력의 충돌

 

이 1,400년 묵은 갈등은 20세기 후반, 새로운 동력을 얻어 폭발했다. 서구 문명의 팽창과 이스라엘의 건국(시온주의)은 이슬람 세계에 공동의 위기감을 안겼다. 이에 대한 대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터키의 아타튀르크처럼 서구화를 따르는 '세속주의'와, 이슬람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이슬람 근본주의'였다.

 

이 근본주의 부흥 운동마저 수니와 시아로 나뉘어 충돌했다. 결정적 사건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었다. 호메이니의 주도로 세계 최초의 '시아파 신정국가'가 탄생했다. 이는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던 '수니파 왕정' 사우디아라비아에게는 실존적 위협이었다.

 

이후 중동은 이란(시아파)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의 거대한 대리전(Proxy War) 무대가 되었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헤즈볼라), 예멘(후티 반군), 바레인 등 중동의 거의 모든 분쟁 지역은 이 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수니파)의 이라크가 이란(시아파)과 8년간 전쟁을 치른 것도, 서구 세력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이 종파 갈등의 연장선이었다.

 

'지하드(Jihad)'라는 개념 역시 이 과정에서 왜곡되었다. 본래 '더 큰 지하드'는 자기 내면의 욕망과 싸우는 '영적 투쟁'을 의미했다. 그러나 급진주의자들은 방어적 전쟁을 의미하는 '더 작은 지하드'를 전면에 내세워, '카피르'로 규정한 모든 적(서구, 이스라엘, 그리고 다른 종파의 무슬림)에 대한 공격적인 성전(聖戰)으로 변질시켰다. 

 

결국, 오늘날 중동의 혼란은 단순한 테러리즘이 아니다. 그것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둘러싼 1,400년 전의 정치적 갈등, 카르발라의 피로 맺힌 역사적 트라우마, 그리고 '카피르'라는 이데올로기적 낙인이 21세기의 지정학적 패권 다툼(이란 vs. 사우디)과 만나 벌어지는 거대한 비극의 현장이다.
 

작성 2025.11.08 09:18 수정 2025.11.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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