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와 면역이 서로 말을 한다고요?’ “면역이 뇌와 대화한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뇌는 ‘생각하는 기관’, 면역은 ‘몸을 지키는 군인’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최근 과학은 이 두 체계가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중심에는 한국계 과학자, 글로리아 최(Gloria Choi) MIT 교수가 있다. 그녀는 2025년 삼성호암상 의학상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폐를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뇌와 면역체계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최 교수의 연구는 지금 자폐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자폐를 뇌의 발달 이상으로만 봤지만, 이제는 면역, 장내 미생물, 그리고 환경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적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자폐를 다시 정의하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는 단순한 ‘정신적 질환’이 아니다. 신경, 유전자, 면역, 환경이 동시에 얽힌 복합 생물학적 스펙트럼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8세 아동 31명 중 1명이 자폐 진단을 받았다. 2000년에는 150명 중 1명이었으니, 20년 만에 5배 늘었다. 그만큼 자폐는 이제 더 이상 드문 질환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완치약’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뇌를 치료하는 약만으로는, 면역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전체 네트워크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리아 최 교수는 방향을 바꿨다. “자폐의 근본은 뇌-면역 상호작용에 있다.”
세계가 주목한 연구: ‘열이 날 때 증상이 좋아진다’의 비밀
2020년, 최 교수의 연구팀은 놀라운 현상에 주목했다. 자폐 아동의 약 17%가 ‘열이 날 때 사회적 행동이 개선된다’는 보고였다. 부모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 열이 나면 갑자기 눈을 마주치고, 평소 하지 않던 말을 합니다.” 이 신기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면역 반응 중 생성되는 단백질이 뇌의 특정 신경세포를 자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단백질이 바로 인터루킨-17A(IL-17A). 이 단백질이 활성화되면, 뇌의 전두엽 신경세포가 ‘사회적 행동 회로(social behavior circuit)’를 다시 작동시킨다. 즉, 면역 반응이 일시적으로 신경 회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 결과는 2024년 Science Immunology에 실리며, 자폐 치료의 새로운 키워드로 ‘면역 신호 기반 치료(Immuno-neural therapy)’를 탄생시켰다.
면역-뇌의 연결고리: 장내 미생물까지 이어지다
흥미롭게도, 이 면역 반응은 장내 미생물과도 연결되어 있다. 글로리아 최 교수는 이미 2017년 Nature 논문 두 편에서 이를 증명했다. 임신 중 바이러스 감염이 모체 면역세포를 과도하게 자극하면,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줘 자폐 행동이 나타난다. 그러나 장내 세균 균형을 회복시키면, 자폐 증상이 현저히 줄어든다. 즉, 자폐는 단순히 뇌의 문제만이 아니라, 면역계와 장내 세균, 뇌의 삼자대화에서 비롯된 현상일 수 있다. 이후 Cell Reports(2023)에서도 같은 맥락의 연구가 이어졌다. 특정 프로바이오틱스가 사회성 행동을 회복시키는 효과를 보인 것이다. 이 연구들은 모두 “자폐 치료의 열쇠가 신경-면역-장내 미생물의 상호작용에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
한국의 길: ‘통합 돌봄 생태계’로 확장되는 치료
자폐 치료의 과학적 실마리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연구를 어떻게 사람들의 삶 속으로 옮길 것인가”다. 2025년 9월, 국내 제약사 아스트로젠이 대한소아청소년 행동발달증진학회와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자폐 통합 돌봄 시스템’을 선언했다. 이 모델은 ▲약물 치료(신경 조절제) ▲생활동작 훈련 ▲가족·학교 지원을 결합한 형태다. 이는 최 교수의 연구가 제시한 “면역과 뇌, 환경이 소통하는 치료”를 사회적 차원에서 구현하는 한국형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즉, 뇌 과학이 신경의 회복을, 면역학이 몸의 반응을, 교육과 돌봄이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삼각축이 함께 작동할 때, 자폐 치료는 비로소 ‘병원에서 사회로’ 이동한다.
자폐는 ‘고쳐야 할 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식’이다
글로리아 최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폐는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과학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를 향해야 합니다.” 이 말은 자폐 치료의 방향을 정확히 짚는다. 치료는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다. 면역과 뇌가 서로 대화하듯, 사회와 개인도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자폐를 둘러싼 편견, 단절, 오해의 벽을 넘는 일. 그 시작은 ‘면역이 뇌와 대화한다’는 이 새로운 과학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언어 속에는 공감, 연결, 회복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