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고, 교사는 지식을 주입한다. 그러나 그 풍경은 마치 오래된 기계의 반복 동작 같다.
지금의 학교 시스템은 3차 산업혁명, 즉 기계와 공장이 세상의 중심이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그 시절 학교의 목적은 분명했다. ‘명령에 따르고,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며, 오류 없이 일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
산업사회는 표준화된 인간을 원했고, 학교는 그 공정을 충실히 수행했다. 교육은 한때 인류의 생존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현실로부터 분리된 제도, 생명의 감각을 잃은 형식으로 남았다. 학생들은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대신 ‘틀리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장, 수식, 도표는 현실의 생존 조건과 거의 무관하다. 정작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교실은 여전히 20세기 칠판 앞에 머물러 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로봇이 생산 라인을 차지했다.
학교는 여전히 가르치지만, 그 가르침은 더 이상 세상과 연결되지 않는다. 지식은 남았지만, 길은 사라졌다. 이것이 오늘의 교육의 현실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기계화된 인간’을 이상으로 삼았다. 정답을 맞추는 인간, 빠르게 수행하는 인간, 표준화된 인간. 그것이 산업사회의 생산성을 높였지만, 인간의 내면을 황폐하게 했다.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있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은 더 이상 ‘노동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할 수 없는 가치는 기술이 아닌 ‘의식’과 ‘자각’이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의 유령 아래 있다.

AI는 이미 정보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인간보다 빠르다. 그렇다면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지식을 넘어서, 도道를 배우는 시대가 온 것이다. 3차 산업혁명형 인간은 5차 산업혁명에서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이미 4차 산업혁명을 지나, 5차 산업혁명의 문 앞에 서 있다.
이 시대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의 공존’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데이터가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시대.이제 교육은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가르쳐야 한다. ‘기술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깨어 있는가?’
5차 산업혁명은 결국 학교의 본질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삶의 길’을 깨닫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완벽히 대체하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노동력’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때 남는 질문은 단 하나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5차 산업혁명의 세계에서 배움의 목적은 생존과 존재다. 명상, 호흡, 대화, 수행, 창조 그 모든 과정이 배움이 된다.이것이 바로 5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짜 교육이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지만, 깨달을 수는 없다.
인간은 깨닫는 존재이기에, 여전히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 배움은 더 이상 학교의 교과서 안에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다시 ‘도생道生’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학교가 아닌 길에서 배우기 위해, 배움이 삶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동방신선학교의 도생道生 교육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다. 학교는 가르쳤다. 그러나 길은 잃었다. 이제 교육은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의 이름은 도道이며, 그 길을 걷는 자가 바로 인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