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밤도 시작됐다.” 잠자리에 눕히자마자 터지는 울음, 30분을 넘어 1시간까지 이어지는 격한 항의. 부모는 안아 달래다가, 물을 건네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보여 준 자신을 자책한다. 이 밤의 주인공은 아이의 울음 같지만, 사실은 불안을 다루는 법을 함께 배우는 가족 전체의 이야기다. 32개월 아이에게 울음은 무기나 버릇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구조 신호에 가깝다. 피곤, 과자 요구, 더 놀고 싶은 마음, 낮에 쌓인 자극, 분리불안의 잔향이 한꺼번에 올라오면 아이는 그 복잡한 혼합 감정을 ‘울음’ 하나로 표현한다. 부모가 이 울음을 “문제 행동”으로만 보게 되는 순간, 밤은 더 길어진다. 반대로 울음을 해석 가능한 신호로 보기 시작하면 대처는 단순해진다. 아이가 기대하는 건 놀라운 기술이 아니라, 매일 같은 순서의 신호, 흔들리지 않는 어조, 방 안에 흐르는 동일한 리듬이다. 이 칼럼이 제안하는 결정적 한 가지는 화려한 수면 훈련법이 아니다. 예측 가능한 일관성이다. 오늘부터 실험해 볼 수 있고, 과학 이론을 몰라도 실천 가능한, 그러나 꾸준함이 필요한 전략이다.
끝나지 않는 울음: 잠투정의 진짜 얼굴
잠투정은 졸린데도 잠들지 못해 나타나는 각성 유지의 표현이다. 낮 시간 과자 섭취, 늦은 낮잠, 과한 스크린 노출, 일관성 없는 낮 규칙이 밤의 울음을 키운다. 여기에 부모의 반응 패턴이 덧붙여진다. 한 번은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다른 날은 단호하게 거절하면, 아이는 무엇이 기준인지 학습할 수 없다. 울음은 길어지고 강도는 세진다. 이해해야 할 핵심은 이 나이의 울음이 “고집”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2개월 전후의 아이는 감정이 올라오는 속도가 이성적 억제를 앞선다. 말을 곧잘 하는 아이여도 감정-행동-언어의 정렬이 어긋나면 울음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부모의 목표는 ‘즉시 조용해지게 만들기’가 아니라, 울음을 다루는 절차를 가르치기로 전환되어야 한다. 절차란 어렵지 않다. 같은 시간에 같은 순서로 씻고, 불을 낮추고, 책을 2권 읽고, 포옹하고, “잘 시간”이라는 합의된 문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 리듬이 며칠, 몇 주 반복되면 울음은 줄어든다. 다만 고열, 발진, 구토, 호흡 곤란, 통증 호소 같은 의학적 신호가 있으면 잠투정이 아니라 질병의 표현일 수 있으니 즉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
32개월, 발달 단계에서의 의미
32개월은 자율성과 분리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시기다. 낮에는 “내가!”, “내가 할래!”가 늘고, 밤에는 분리불안의 미세 파도가 남아 흔들린다. 언어 능력은 빨라졌지만 정서 억제 기능은 아직 성장 중이어서, 원하는 바가 좌절되면 울음으로 회귀한다. 발달심리 관점에서 보면 이는 정상 발달 궤도다. 행동분석 관점에서는 울음이 강화를 받으면 지속된다고 본다. 울 때마다 간식·영상·추가 놀이가 제공되면, 아이는 울음이 보상으로 이어짐을 학습한다. 애착 이론 관점에서는 민감하지만 일관된 반응이 핵심이다. 즉,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되(“속상했구나”) 경계를 지킨다(“지금은 잘 시간이다”). 세 관점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울음을 문제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학습과 애착, 발달의 교집합에서 이해하면 전략이 선명해진다. 현장 부모들의 경험도 이를 뒷받침한다. “달래기-양보-후회”의 밤을 반복하다가, 일정표를 벽에 붙이고 수면 루틴을 그림으로 함께 확인하며, ‘책 2권-포옹-소등-자장가 3분’ 같은 구체적 루틴을 2주만 지킨 가족은 울음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반복 가능성이다.
양육 태도의 차이가 만드는 밤의 풍경
같은 32개월, 같은 집 구조, 같은 침구라도 부모의 반응 패턴에 따라 밤의 풍경은 달라진다.
즉각 충족형: 울음이 시작되면 요구를 곧바로 들어준다. 단기적으로는 빠르게 조용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울음의 요구 기능이 강화되어 지속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방치형: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일부 상황에서는 단기간 울음이 줄 수 있으나, 불안이 높은 아이·민감 기질에서는 정서적 고립감이 커져 밤과 부모에 대한 부정 연합이 생길 수 있다.
구조화-공감형(권장): 감정을 이름 붙여 공감하고(“지금 속상해”), 규칙을 짧게 반복하고(“책 두 권 끝, 이제 소등”), 대안을 제시한다(“내일 아침에 이어서 놀자”). 같은 문장, 같은 순서를 유지해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논리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 불안을 줄인다’는 점이다. 아이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매일 같은 순서의 감각 신호(불빛, 목소리 톤, 자장가 길이, 향기)를 통째로 기억한다. 그래서 루틴은 말보다 강력하다. 실천 팁을 절차로 정리하면 이렇다.
저녁 루틴 고정: 소등 시간 역산 60~90분 전부터 고자극 활동과 스크린을 멈춘다.
시각 신호: 조도를 낮추고, 소음을 줄이고, 같은 자장가 길이를 유지한다.
언어 스크립트: 매일 같은 짧은 문장 2~3개만 사용한다. 예) “책 두 권 끝”, “포옹 하나”, “잘 시간이다.”
경계+선택: 큰 원칙은 고정하고(소등), 그 안에서 작은 선택권을 준다(책 고르기, 담요 선택).
강화의 방향 바꾸기: 울음으로 얻는 것이 없고, 진정 시도(깊은 호흡 따라 하기, 포옹 요청하기)로 얻는 것이 있도록 강화한다.
기록: 7일만 간단히 기록하면 패턴이 보인다(낮잠 길이, 마지막 스크린 시각, 울음 지속 시간). 조정은 데이터로 한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부모의 감정 소모를 줄인다는 데 있다. 스크립트와 루틴이 있으면 즉흥 논박이 줄고, 반복 문장만 말하면 된다. 다만 초반 3~5일은 소거 폭발처럼 울음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때가 분수령이다. 규칙을 유지하되, 아이의 불안 신호(몸 떨림, 구토, 과호흡)가 보이면 잠시 루틴을 멈추고 안정부터 잡는다. 안정이 확보되면 다시 루틴으로 돌아온다.
부모가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전략
결정적 한 가지는 일관성 있는 신호다. 같은 시간, 같은 순서, 같은 문장, 같은 톤. 이 네 가지가 밤의 예측 가능성을 만든다. 어제는 안아 재우고 오늘은 방치하는 식의 일관성 결여는 가장 흔한 함정이다. 오늘부터 ‘작게 시작해 꾸준히 지키는 것’이 승부다. 규칙이 아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의 틀을 제공한다고 이해하면 부모의 태도도 안정된다.
잠투정은 아이가 분리와 자율을 연습하는 무대다. 부모가 흔들리지 않는 리듬을 제공하면, 아이는 울음 대신 말과 몸을 쓰는 법을 배운다. 만약 지금 당신의 밤이 매일 같다면, 원인은 아이의 기질이 아니라 우리 집의 패턴일 수 있다. 오늘 밤부터 이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 집 밤에는 어떤 신호가 반복되는가?” 반복되는 신호가 없다면, 지금 가장 간단한 루틴을 하나 정하자. ‘책 두 권-포옹-소등-자장가 3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7일만 기록해 보자.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울음이 여전히 30분 이상 지속되거나, 아이가 통증·고열·이상 호흡을 보이면 전문가와 상의한다. 그 외 대부분의 잠투정은 예측 가능한 일관성으로 점점 짧아진다. 긴 밤은 언젠가 끝난다. 그 끝은 우연이 아니라, 부모가 매일 쌓는 작은 반복에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