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독립운동 조각상 : 출처 https://www.ehistory.go.kr/view/photo?mediasrcgbn=FP&mediaid=0&mediadtl=5565
탑골공원 장기 또는 바둑판 없앤 게 문제인 것 같은 기사가 나온다. 장기와 바둑은 아무런 죄가 없다. 오히려 뇌를 움직이고 친목을 다지고 좋은 면이 많다. 서구에서도 공공장소에서 체스를 두는 곳이 있다. 다양한 연령층이 어울려 체스를 즐기는 것처럼 우리도 세대를 아우르는 놀이 문화일 수 있었다.
장기와 바둑은 어떻게 보면 한국 전통 놀이로 전 세대가 어울리는 건전한 놀이가 될 수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장기와 바둑을 두고, 대화를 통해 세대 간 이해를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이가 특정 연령층만 즐기고 그 연령층이 특정 장소를 점령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문제의 핵심은 술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술에 관대한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술을 지나치게 먹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심신미약이라는 명목으로 너그럽게 처벌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 또는 바둑만 두었다면 나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3.1 운동 당시 탑골공원에서 민족 대표 33인을 학생과 시민 200여 명이 기다렸고, 민족 대표 33인이 나타나지 않자, 팔각정 앞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3.1운동은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 못지않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평화적인 저항 운동이다. 당시 한국에 와 있던 영국 언론인 프레더릭 매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는 3.1 운동 덕분에 서구 열강이 조선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게 되었다고 평한다.
가쓰라-데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했다. 헤이그 특사 파견 실패 등 일련의 사건에서 보듯이 서구 열강은 조선을 독립 의지를 가진 나라로 보지 않았다. 매켄지에 따르면 당시 서구 열강과 맺었던 다양한 외교 조약에서 우리 공식 문서가 중국어로 쓰였기에 중국의 식민지로 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지배층이 망쳐 놓은 독립 국가 조선의 모습을 민중들이 살린 것이다. 일제의 지배를 거부하는 그들의 비폭력 만세 운동에 서구 열강이 놀랐다고 한다. 일본 내 조선인 유학생들이 시작한 2.8 독립 선언부터 수개월 동안 만세 운동은 계속되었다. 앞에 나서서 외치던 누군가가 쓰러지면 뒤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가며 한동안 계속되었다.
가장 최근 외환 운동 후 ‘금 모으기 운동’까지 한국을 지켜온 것은 늘 이름 없는 민중이었다. 그냥 한민족 누군가가 조선 말기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켜온 것 같다.
이런 3.1운동 시작의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에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도 탑골공원 안은커녕 근처도 가는 게 꺼려졌다.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술 먹고 주변 사람에게 민폐 수준이 아닌 행패를 부리는 노인들을 보는 게 싫은데, 그런 노인이 한가득 있을지도 모르는 장소라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옛 서울역사 근처 수난을 받는 독립운동가가 한 분 더 있다. 강우규((姜宇奎) 의사이다. 1919년 9월 2일 서울역에서 제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오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당시 그의 연세가 65세였다. 그가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현장인 서울역 지하철 2번 출구에 세워졌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어떤 존경심도 없는 사람들이 동상에 노상 방뇨하고 아무렇지 않게 괴롭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것처럼 저런 류가 있으니까, 독립운동가가 제대로 대접 못 받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런 유의 행위를 왜 방치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술에 관대한 나라라 그런지 술 먹고 하는 행위에 대해 법은 있어도 처벌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