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훔쳐간 세월

시간의 역설

꿈의 무게


젊었을 때는 가라가라 해도 그리 더디게 가더니, 인생의 내리막 황혼길에 서니 마치 도망치듯이 달아난다. 어린 시절, 방학이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던 그 긴 하루하루들이 지금은 꿈처럼 아득하다. 스무 살 청춘의 나에게 하루는 한 달 같았고, 한 달은 일 년 같았다. 그때는 시간이 모래시계 속의 고운 모래알처럼 한 알 한 알 떨어지는 것이 보일 듯했다.

 

<사진; AI image. antnews 제공>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간은 모래가 아니라 물이 되었다.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흘러내리고, 나는 그 물살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떠내려갔다. 서른이 되었을 때도, 마흔이 되었을 때도 아직 시간은 많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고, 손등의 핏줄은 아버지의 그것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인생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도 아득히 먼 줄로만 알았는데, 엊그제 청춘의 인생길이 있는 듯 어느새 황혼의 길을 걷고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가슴 속에 품은 꿈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고, 그 별들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벽에 걸린 달력의 날짜들이 하나씩 넘어가도 나는 조급하지 않았다. 시간은 무한했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이름의 파도가 밀려왔다. 생계를 위해 붓 대신 펜을 잡아야 했고, 캔버스 대신 장부와 씨름해야 했다. "잠시만, 조금만 더"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꿈을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잠시만"이 십 년이 되고, 이십 년이 되고, 어느새 칠십 여 세월이 되어버렸다.

 

인생길이 너무 허무해서 풀끝에 매달린 이슬과도 같고, 청춘의 푸른 꿈을 다 채우기도 전에 바람처럼 순식간에 가버렸다. 어느 여름 아침, 정원의 잔디 위에 맺힌 이슬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새벽의 이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또 얼마나 덧없는지를. 해가 떠오르면 그 모든 아름다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내 청춘도 그랬다. 그토록 찬란하고 생생했던 스무 살, 서른 살의 나날들이 이제는 희미한 사진 속 모습처럼 아스라하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그리 바쁘게 쫓아다녔을까. 무엇을 그리 중요하다고 여겼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일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별것 아닌 성공에 일희일비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쳤다. 아내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여유,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기쁨,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하는 즐거움. 그런 것들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말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그 "나중에"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에 잎을 무성하게 키우며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청춘에 꿈이라는 꽃을 피우고, 중년에 경험이라는 잎을 무성하게 키우며, 노년에 지혜라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꽃 피울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아직 꽃봉오리도 맺지 못한 채로 벌써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나이 든 나무들을 바라본다. 수십 년을 한자리에서 묵묵히 자라난 그들이 부럽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살았다. 봄에는 봄답게, 여름에는 여름답게, 가을에는 가을답게.

 

이제 황혼길에 서서 뒤돌아보니, 인생은 정말 짧다. 그토록 길고 아득할 것 같던 이 길이 이렇게 빨리 끝이 보일 줄 몰랐다. 하지만 후회만 할 수는 없다. 비록 늦었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다. 황혼의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붓을 다시 꺼내들었다. 손은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스무 살 때보다 더 간절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던가.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더욱 소중하고, 더욱 절실하다.

 

청춘을 훔쳐간 세월을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세월이 없었다면 지금의 깊이도 없었을 것이다. 젊은 날의 꿈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그 꿈들이 내 삶을 이끌어온 등불이었다. 그리고 지금, 비록 황혼이지만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거창하지 않은, 소박하지만 진실한 꿈을.

 

세월이 훔쳐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그리고 앞으로 올 하루하루에 대한 희망을. 비록 청춘은 지나갔지만,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황혼의 노을이 새벽의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다.

 

-조 영길 글



작성 2025.08.08 09:07 수정 2025.08.0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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