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유순] 솔잎 사랑

▲ 정유순/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소나무는 침엽상록수(針葉常綠樹)로 잎이 항상 푸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지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고 가지와 잎이 특이해 동양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속설에는 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숯·고추·백지와 함께 솔가지를 새끼에 꽂아 금줄을 만들어 대문 앞에 쳐 놓아 잡인의 출입을 금했다. 또한 별도의 날을 받아 장()을 담글 때도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마찬가지로 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쳐 놓아 잡귀와 부정(不淨)을 막았다.


또 궁궐을 짓거나 집을 지을 때 기둥·서까래·대들보 등의 건축자재로 많이 사용하였고, 사람이 죽어 자연으로 돌아갈 때 관()으로 사용하였으며, 목재선박을 만들 때에는 소나무가 으뜸이다. 먹거리가 부족해 춘궁기(春窮期) 때에는 소나무 가지의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인 백피(白皮)를 생으로 씹어 먹었고, 송기떡이나 죽으로 끓여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즉 관솔은 옛날 촛불이나 등잔불 대신 사용되었고, 이 송진으로 짠 기름은 솔기름이라 하여 기계 윤활유 등으로도 쓰였다. 지금도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 산에 가보면 일제강점기 때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부족한 비행기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 강제로 송진 공출을 자행하여 상처가 난 소나무가 자주 눈에 보인다.


소나무는 수명이 길어 장수(長壽)를 나타내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고,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독야청청(獨也靑靑)하여 절개와 의지를 꿋꿋하게 나타내는 상징이다. 꿈에 소나무를 보면 벼슬할 징조이고, 솔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 할 징조이며, 송죽그림을 그리면 만사형통할 기세라고 한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다. 조선조 세조(世祖)는 행차할 때 타고 가던 연()이 소나무 밑을 지날 때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무사히 지나가게 하자 이 소나무에게 정이품(正二品)의 벼슬을 내렸다. 단종(端宗)이 묻혀 있는 영월의 장릉(莊陵)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 능()을 향해 읍()을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굽어져 있어 단종(端宗)을 애도하는 충절의 소나무처럼 보인다.


서해의 곰소만에서 56월에 생산되는 천일염이 좋다고 소문난 것은 변산 일대의 송화(松花)가루가 염전에 떨어져 소금과 섞이기 때문이다. 부안 변산은 안면도와 더불어 소나무 군락지이다. 소나무의 종류도 다양하나 크게 나누어 보통 솔잎이 침형으로 두 개이면 우리 조선송(朝鮮松)이고, 세 개이면 왜송(倭松)이며, 5엽송은 잣나무 종류이다.

 

이렇듯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생존의 역사를 함께해 왔으며,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부부의 사랑이라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일러준다. 소나무는 사람에게 한번 부부가 되면 솔잎처럼 한 묶음이 되어 떨어지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고 한다. 소나무의 두 잎이 어떻게 해서 서로 만나 한 묶음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운명처럼 만나 두꺼운 표피를 뚫고 바깥세상으로 나와 가지에 붙어 있다가 어떤 연유로든 떨어져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물리적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절대로 떨어지지 아니한다.


옛날에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든 한번 부부가 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을 숙명(宿命)처럼 여겨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고도 했다. 조강지처라는 말은 가난할 때 친하였던 친구를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내보내지 않는다.(臣聞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신문빈천지교불가망 조강지처불하당)”라고 한 후한(後漢) 때 사람 송홍(宋弘)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오늘날에는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소나무와 마주할 기회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참나무 등 활엽수(闊葉樹)의 서식지가 넓어지면서 소나무의 식생 면적이 좁아지고 있다. 그래도 산에 가면 소나무가 대세를 이루기는 하지만, 그 기세는 예전만 못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도 이상한 기류가 번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설령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난다. 여건이 부부 간의 사랑을 끝까지 묶어 둘 사회적 끈이 약해서 그런 것인가?


또 나이 든 부부 중에도 황혼이혼이 유행을 하더니 지금은 졸혼이란 말이 시중에서 화제다. 졸혼(卒婚)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이혼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즉 나이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여생을 자유롭게 살며 즐기기 위해 등장한 신풍속이다.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고, 졸혼이란 신조어가 나오는 것은 우선 상대에 대한 소통과 이해가 부족하고 서로를 위해 참아주는 인내심이 부족해서 나오는 것 같다. 다음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해 쉽게 생각하고 쉽게 결단해 버리는 소아병적인 사회적 세태도 한몫하는 것 같다.


비록 우리 역사·문화와 함께 해온 소나무의 기세가 꺾여서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소나무잎처럼 한번 묶이면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솔잎 사랑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시 유행처럼 번져 웃음꽃이 만발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홍성군 서부면 궁리소나무 (필자 정유순 제공) ⓒ한국공공정책신문



瓦也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작성 2025.08.07 14:13 수정 2025.08.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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