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신을 찬미한 단테, 신을 의심한 멜빌
서양 문학사에서 신은 오랜 시간 질서와 도덕, 구원의 중심축이었다. 중세의 단테가 쓴 『신곡』은 그 정점에 있다. 단테는 자신의 지옥, 연옥, 천국 여행을 통해 신의 정의, 심판, 자비를 확인하며 찬미한다. 그의 신은 절대적이며 계시적 존재다. 모든 것이 질서 속에 있고, 인간의 고통은 신의 계획 속에서 해석된다.
반면, 19세기의 허먼 멜빌은 『모비 딕』을 통해 신에 대한 의심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선장 에이해브는 거대한 흰 고래를 향해 집착한다. 그 고래는 멜빌에게 있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의 대리자, 혹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우주의 본질 그 자체다. 에이해브는 그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다. 오히려 싸운다. 단테가 구원을 향해 걷는다면, 멜빌은 절망과 침묵을 마주한 채 저항한다.
이 두 작가가 ‘신’을 대하는 태도의 간극은 단순히 시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싶은가, 혹은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문학적 반응이었다.
2. 구원의 계시에서 존재론적 침묵으로
단테의 『신곡』은 절대적인 질서와 의미의 세계다. 선과 악은 명확히 구분되며, 모든 인간의 행동은 신의 정의에 따라 평가된다. 고통은 형벌이며 동시에 구원의 여정이다. 인간은 신을 향한 경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산업화와 과학, 철학의 발달은 신의 침묵을 실감하는 시대를 만든다. 『모비 딕』 속 신은 설명도, 계시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고, 세상은 무의미한 파도 위를 떠다닌다. 고래는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며, 그저 존재할 뿐이다.
멜빌은 이 침묵을 통해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그 존재가 더 이상 인간에게 이해되거나 소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학은 이제 신을 전하는 도구가 아니라, 신이 남긴 침묵을 견디는 사유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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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은 상징인가 실재인가: 문학이 빚은 신의 얼굴
문학에서 신은 언제나 물리적 존재라기보다 상징과 서사의 중심이었다. 단테는 신을 우주의 완성된 중심으로 설정해 인간의 삶을 설명했다. 그에게 신은 절대적 실재다. 반면, 멜빌에게 신은 의문부호이며 메타포다.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의 광기는 실은 신이라는 존재를 해석하려는 인간의 욕망 그 자체다.
『신곡』은 신이 주는 의미의 안정성을 독자에게 제시했고, 『모비 딕』은 그 의미가 무너졌을 때의 허무와 광기를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문학이 신을 어떻게 빚어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 이미지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테는 독자에게 신이 존재함을 확신하게 하고, 멜빌은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침묵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4. 문학이 남긴 질문, 신 없는 시대의 믿음은 가능한가?
『신곡』과 『모비 딕』 사이에는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해체 과정이다. 인간은 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했지만, 과학과 철학, 그리고 전쟁과 고통은 신의 부재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신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멜빌은 그 답을 주지 않는다. 그는 침묵 속에 남는다. 하지만 문학은 계속 말한다. 신의 자리를 대신해 질문을 남기고, 인간의 내면과 세계를 다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단테는 절대적 의미의 기쁨을, 멜빌은 무의미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의 책임을 말한다. 신은 더 이상 문학 속에서 유일한 주인공이 아니지만, 그 빈자리를 통해 문학은 여전히 믿음, 윤리, 존재의 문제를 사유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