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용 (수필가/철학자)
한산한 섬이란 뜻의 이름은 한산도라고 합니다. 한가할 한閑, 뫼 산山, 섬 도島가 이 섬의 이름을 이루는 한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영웅 이순신은 바로 이 이름을 가진 섬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반전입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남다른 생각입니다. 이러면서 천재의 시간 보내기가 탄생합니다. 불멸의 순간이 빛처럼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든 차에 /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알게 된 〈한산도가〉의 문구들입니다. 초등학교 교실에 걸려 있던 이순신 장군의 초상이 기억나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인쇄되어 있는 오백 원짜리 지폐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그 거북선의 측면에 있던 노의 숫자를 세어보며 시간을 보내던 순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내 안에서 가장 오랫동안 버텨온 기억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순신, 그 이름은 내 인생의 좌표처럼 각인되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나의 영웅은 잠들 수 없었습니다. 외적이 침입할까봐 큰 칼을 옆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 즉각 반응을 하고 대처할 수 있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단칼에 벨 요량으로 준비해 둔 것입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적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려서 애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애는 창자를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애가 끊어지는 느낌, 그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 고통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했습니다.
또 얼마나 놀랐을까요. 고양이가 낯선 소리에 반응하는 예민함과 민감성이 감지되었습니다. 약자의 겁먹은 자세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반응하기 위한 강자의 태도의 전환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수루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병사들, 부하들은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을 위해 쉬게 해 준 것입니다. 하지만 장군은 잘 수가 없었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의 이런 걱정 때문에 이 나라는 몰락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멸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잠 못 든 밤들이 있어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모아 나는 《초인 사상으로 보는 인문학》이라는 책을 써놓기도 했습니다. 나의 철학을 담아놓은 소중한 책입니다. 내가 죽으면 나의 유언이 되어줄 책입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인생을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힘들 뿐입니다. 그 어려움과 힘듦을 알면 됩니다. 그 수고를 깨달아주면 됩니다.
인간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 반대를 알아야 극단적으로 크다는 태극이 완성됩니다. 반대를 알아야 한다는 그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인간의 반대편에는 괴물도 있고 귀신도 있겠지만, 그런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것이 더 이롭습니다.
인간의 반대편에 신이 있습니다. 근대는 중세의 후배 세대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근대는 르네상스 이후 겨우 오백 년을 조금 넘기고 있을 뿐입니다. 근대 이후의 역사가 오백 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중세 천 년에 비하면 절반밖에 안 되는 부족함이 인식됩니다.
중세 천 년 동안 천재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몰두했습니다. ‘신의 신성’을 위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인간성’이라는 개념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한산해야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인생 공부는 새로운 공부입니다. 여유가 생겨야 공부할 마음이 생깁니다. 여유의 창조는 자기 몫입니다. 여유는 시공간 속에 있습니다. 여유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웅은 한산해야 할 섬에서도 잠을 잘 수 없었듯이, 우리는 이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할 뿐입니다. 그게 우리, 산 자의 책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