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전은 끝이 아니었다. 평화의 시작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한반도는 고요했다. 격렬했던 포성이 멎었고, 교전은 중단됐다. 이 날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며, 6·25전쟁의 총탄이 일시적으로 멈춘 날이다.
그러나 그 정적은 곧 긴장의 연속으로 바뀌었다. 남북은 법적으로 여전히 전쟁 중이고, 총탄은 사라졌지만, 불신과 분단은 지속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정전협정일은 종전(終戰)의 날이 아니라, ‘평화의 문턱’ 앞에 서 있던 날이다.
그렇다면 7월 27일이 단순히 ‘정전’만을 기념하는 날이어야 할까? 이제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즉, 전쟁을 멈춘 날이 아닌, 평화를 시작할 수 있는 날로 새롭게 기억할 때다.
‘감사의 날’을 넘어 ‘평화의 날’로
매년 7월 27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2025년 올해도 마찬가지로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는 국내외 참전용사, 유가족, 참전국 외교사절,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다.
이번 기념식의 주제는 “함께 지킨 자유와 평화, 미래로 잇다”로, 22개 참전국 국기와 유엔기, 태극기가 대한민국 전통 매듭 문양 속에 어우러진 주제 이미지는 연대와 희망, 계승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기념식은 전통과 품격을 갖췄으며,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고,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는 공연과 국민의례가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감사’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참전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며, 그 계승의 가장 강력한 방식은, 평화를 제도화하는 것, 즉 7월 27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는 일이다.
기억은 머물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기념일은 그 나라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말해준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을 ‘해방의 날’로 바꾸며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를 다짐하고, 일본은 ‘종전기념일’로 전쟁의 참상을 상기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정전’이라는 중단의 시점에 머물고 있으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중단보다는 진전이며,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진보하는 상태다.
‘평화의 날’은 선언이자 방향이기에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만들고 싶다”는 사회 전체의 다짐이며,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평화의 날’은 선언이 아닌 실천이다
‘평화의 날’은 단지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기에 그날의 기념 방식과 내용도 함께 변해야 한다.
첫째, 학교에서는 ‘평화 토론회’나 ‘정전협정의 의미’에 대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둘째, 지방자치단체는 지역별 평화기념행사, 평화문화예술제, 청년평화캠프를 운영할 수 있다.
셋째, 시민들은 디지털 캠페인, 시민 선언, 거리 공연 등을 통해 평화를 표현할 수 있다.
실제 많은 시민단체와 청년 모임에서는 이미 7월 27일을 ‘평화의 날’로 부르기 하는 등 작은 움직임이지만, 이것이 쌓이면 사회적 공감으로 이어지고, 결국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념일은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먼저 ‘평화의 날’을 말하자
정전협정일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이지만 그 전환점은 여전히 ‘과도기’에 머물러 있기에 우리는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평화를 제도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는 총성이 울리지 않도록, 다음 세대가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전환점을 ‘평화의 날’로 선언할 수 있다면, 이제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먼저 말하자.
“우리는 7월 27일을 평화의 날로 기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