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 그리고 재난은 우리를 덮친다

–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어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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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로지 자신의 작품 출판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가 있다. 친구가 놀자고 해도 무심히 거절하고, 옆방의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고 열심히 글을 쓰는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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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미완의 소설 <클럽 샌드위치>를 완성하기 위해 친구 펠릭스의 별장으로 향한다. 그는 오직 작품이 출간되기만을 바라며, 자기 주변의 모든 관계를 귀찮고 성가신 방해물로 여긴다. 바다로 나가자고 졸라대는 펠릭스, 옆방의 나디아, 그리고 지나치게 자유롭고 솔직한 구조대원 데이빗—모두가 그에겐 감내해야 할 불편함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결국, 작품이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롯된 내적 불안과 결핍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레온은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의 무력함을 가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인물들의 관계와 정체가 드러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아이스크림을 팔던 나디아는 사실 문학 박사 과정에 있는 연구자였고, 출판사 편집장의 방문은 레온에게 자신의 글이 실패했음을 직면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한가로운 여름 별장의 정적 풍경을 벗어나, 피할 수 없는 재난의 기운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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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페촐트 감독은 이 영화를 구상하던 당시, 프랑스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채 호텔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영화제 선물로 받은 에릭 로메르 DVD 전집을 보며 <어파이어>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해변과 여름, 젊은이들의 대화로 구성된 로메르적 세계가, 페촐트 특유의 긴장감과 존재론적 고립을 통해 재구성된 셈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펠릭스가 예술학교 포트폴리오를 위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펠릭스는 그들의 시선 너머의 풍경, 즉 바다에 의미를 둔다. 반면 레온은 그들을 정면으로 찍게 되면 오히려 사진이 촬영자를 응시하게 되어 의미가 희석된다고 주장한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바라보는 것’과 ‘바라보여지는 것’ 사이의 본질적인 간극을 드러낸다. 예술은 타인을 응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시선을 드러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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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불길이 다가온다. 산짐승이 타고, 친구가 죽는다. 그리고 레온은 비로소 생의 균열을 경험한다. 그는 이 재난 속에서, 펜으로 세상을 통제하려 했던 자기 오만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험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클럽 샌드위치>가 아닌, 이 여름의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책을 써낸다. 친구 펠릭스의 사진은 그 책의 표지가 된다.

재난은 모든 것을 불태우지만, 때로는 한 예술가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고립과 상실을 거쳐 우리는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문학은 결국 ‘나’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다. 코로나라는 고립의 시간 속에서 페촐트가 깨달은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예술은 세상을 담는 행위이며, 그 시작은 타인을 향한 열린 시선이다.



**K People Focus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희망의 칼럼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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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07.21 19:22 수정 2025.07.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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