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진짜 가르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디지털 교육, 왜 모두에게 같지 않은가
“아이에게 태블릿을 쥐어줬는데 왜 공부를 못 할까?”
이 질문은 한국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푸념이다. 정부는 태블릿을 보급하고, 학교는 온라인 학습 앱을 안내하며, AI가 학생의 수준에 맞춰 과제를 추천해 준다고 홍보한다. 모든 것이 갖춰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전히 어떤 아이들은 혼자서 AI 튜터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반면, 어떤 아이는 태블릿을 켜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겉으로는 동일한 ‘디지털 교육 환경’ 속에 놓여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격차는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다.
“기기는 공평하게 배분되었을지 몰라도, 배움의 기회는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가장 정확히 묘사한다. 겉보기에는 전국의 학생이 똑같이 AI, 태블릿, 앱 기반 교육을 받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 도구를 제대로 쓸 수 있느냐’에 따라 배움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기술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배움은 학생의 가정환경, 디지털 리터러시, 학습지원체계에 따라 다르게 쌓인다.
기기의 보급과 학습 격차는 왜 반비례하는가
대한민국은 디지털 기기 보급률만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에 스마트기기를 보급했고, 지자체는 ‘AI 디지털 학습 역량 강화’를 내세워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기기 보급’은 곧바로 ‘교육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23년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디지털 학습 실태조사’에 따르면, 태블릿이나 노트북이 있는 가정에서도 절반 이상은 ‘자녀가 디지털 학습 도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학습을 도와줄 어른이 없는 경우. 둘째, 기기 사용법을 스스로 익힐 능력이 부족한 경우. 셋째, 학습보다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 등 비학습적 사용에 더 노출되는 경우다.
특히 부모가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사교육이나 교육지원을 받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일수록 기기를 '학습 도구'로 인식하기보다 단순한 '놀잇감'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아이가 태블릿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의 수백 개의 앱 중 실제로 학습에 도움 되는 콘텐츠를 선별해 사용하는 능력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격차가 누적되면, 디지털 교육은 평등한 출발점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 격차’를 낳는 통로가 된다.
‘접근성’이 아닌 ‘활용성’이 교육의 성패를 가른다
오늘날의 디지털 교육은 ‘기술의 문제’보다 ‘활용의 문제’다. 쉽게 말해, 태블릿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태블릿을 어떻게 쓰느냐가 학습 격차를 만든다.
기기를 통한 학습에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전제되어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히 기기를 작동하는 능력을 넘어서, 정보를 검색하고 분별하며,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을 포함한다. 이 능력은 가정에서의 디지털 사용 습관, 학교에서의 학습 지도, 교사의 디지털 교육 역량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교육부가 2025년까지 모든 교실을 스마트 교실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지금, 진짜 필요한 것은 ‘기기 보급’이 아니라 ‘활용력 키우기’다.
예를 들어, AI 튜터 앱이 있다고 해도, 그 앱을 어떻게 사용해야 자신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없다면 오히려 아이는 ‘앱에 맡기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수동적 학습에 익숙해질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기기 보급 정책은 ‘도구 제공’에서 그쳐선 안 된다. 반드시 활용 교육이 병행돼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 연수, 학부모 디지털 교육, 지역 교육센터의 활용법 강좌 등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아이를 진짜 가르치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AI도, 태블릿도, 수십만 개의 교육 앱도 결국은 도구일 뿐이다. 아이를 진짜 배우게 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교사의 지도가, 학부모의 관심이, 지역사회의 교육 인프라가 아이의 학습을 가능하게 만든다.
디지털 교육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다음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의 디지털 역량 강화: 기기의 활용법뿐 아니라, 그로 인한 수업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사는 학습 지도자일 뿐 아니라 디지털 활용의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부모의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 가정에서의 교육 지원 격차가 가장 크다. 특히 저소득층 가정에 대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맞춤형 콘텐츠 설계: 모든 아이에게 같은 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수준과 흥미, 성향에 맞는 개별 콘텐츠 큐레이션이 요구된다.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 교육 플랫폼 강화: 도시와 농촌 간 교육 정보 접근성은 아직도 격차가 크다. 온라인 플랫폼이 이를 메울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교육은 결국 관계의 산물이다. 어떤 기기도, 어떤 앱도, 사람의 따뜻한 가르침과 격려를 대체할 수는 없다. 기술은 관계를 보완하는 수단이어야지, 관계를 대체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기술보다 중요한 질문을 던질 때다
“태블릿을 줬는데 왜 공부를 못 할까?”
이 질문의 진짜 답은 “기기를 줬지만 배움의 맥락은 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기기를 줬을 때, 아이가 배울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 해답은 기기가 아니라 사람, 교육 철학,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책임에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교육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과정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 진짜 배움은 여전히 관계 속에서 자란다. 우리는 아이에게 태블릿이 아니라 함께 배울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