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항상 분주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상시보다 일찍 출근하거나 이상하리만치 길이 뻥 뚫린 운수 좋은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호사를 부립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평소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큰길에서 벗어나 갓길로 나가는 것 뿐입니다.
호사 치고는 너무 값싸 보이시나요?
큰길을 벗어나면 신도시 거주지역을 통과하므로 촘촘한 신호등과 속도 제한에 걸려 차가 멈칫멈칫 굴러갑니다.
그래도 저는 이 길이 좋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조잘거리는 모습이나 길 건너편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팔짝팔짝 뛰면서 손짓하는 모습은 귀엽고 생기가 느껴져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아마 저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저렇게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꼈을 테지요.
아주 잠깐이지만 근심이 쏙 들어가고, 오늘 하루는 좋을 거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얻습니다.
교차로를 세 개 지나면 냇가를 끼고 있는 공원이 나옵니다.
회전교차로도 있고, 공원을 산책하는 동네 주민, 나무와 풀, 아침 햇살과 향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계절 풍경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주 가끔은 겹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천변으로 꽃이 가득 필 때입니다.
봄에는 조팝나무꽃이 주렁주렁 핍니다. 봄이 지나면 아카시아꽃이, 그리고 여름 초입에는 금계국, 가을에는 흐드러진 소국이 지천입니다.
이럴 때면 어쩔 도리없이 차에서 내려 꽃을 와락 껴안아 줍니다.
지금이 바쁜 아침 출근길 상황인 것을 잊지 않으셨지요?
기껏해야 5분, 1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긴박한 출근 시간에 꽃향기를 맡고 감탄하는 일은 묘한 흥분과 기쁨을 안겨줍니다.
호사를 짧게 끝내고, 다시 출근길에 합류합니다.
이제부터 회사로 가는 길은 소풍처럼 즐거워집니다.
그리고 닳아빠진 하루가 싱그러워지고, 이튿날까지 맑은 기운이 지속됩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직장인의 대부분은 속도와의 싸움, 타자와의 비교와 경쟁, 매일 똑같은 업무의 반복,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과 시들한 내일을 겪고 있습니다.
도무지 반짝이는 일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입니다.
김광규 시인의 시 <작은 사내들>처럼 우리는 너무 작아져서 ‘나’라는 존재를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모임을 갖고 박수를 치며 작아지고 /
.... 배가 나와 열심히 골프를 치며 작아지고 /
칵테일 파티에 나가 양주를 마시며 작아지고 /
..... 성명과 직업과 연령만 남고 /
그들은 이제 너무 작아져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시인은 이력서에 나오는 성명이나 직업 그리고 나이 같은 명사적 삶이 아닌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지, 무엇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는지와 같은 동사적 삶, 주체적 삶을 알려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삶을 발전하는 과정이 아니라 고착으로 보기 때문입니다.”(주)
발전하는 것은 변화를 멈추지 않습니다.
발전은 늘 새로워지려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전에는 끝이 없고 부단한 자기혁명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삶을 고착으로 본다면 과거에 연연하거나 변화를 회피하고, 쌓아놓은 것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길들어져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광고판이 요란하게 붙어있어서 모두가 선망하는 길에 자신을 욱여넣습니다.
제가 출근길에 누린 감탄과 기쁨은 평소에 오가는 익숙한 길, 큰길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빠르고 익숙한 길을 고집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풍광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익숙한 길, 빠른 길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습관화되어 이제는 다른 길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출근길을 벗어나듯이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살아왔던 삶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기만 할까요?
성명과 직업과 나이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롭고 충만한 삶의 스토리를 채워나가는 일이 그렇게 쓸모없는 일이기만 할까요?
네비게이션에 끌려가는 효율적이지만 단조로운 삶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따라 걷는 편하고 행복한 삶도 존재합니다.
네비게이션을 끈다고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길, 신나는 길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 이상은 있을, 우리를 신나게 하는 그 일을 상상해보는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제임스 홀리스(김현철 옮김)의 저서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인용한 문장으로 그는 “우리의 정신은 변하지 않으면 분노로 시들고, 성장하지 않으면 안에서 썩어 죽어버린다.”며, 고착적 삶을 떠나 항해를 이어가길 격려하고 있습니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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