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다. 창업 초기 고생을 함께한 공동 창립자, 야근을 마다하지 않던 초기 직원들, 자금을 융통해준 투자자들, 그리고 믿고 거래를 시작한 첫 고객까지. 이들은 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도약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 이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업이 성장하면, 그 '다리'는 종종 기억되지 않는다.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교체 과정에서 공동 창립자가 배제되고,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던 계약직은 외면당하며, 과거 위기 때 신뢰를 준 협력업체는 더 싼 조건의 외국 업체로 대체된다. ‘과하탁교(過河坼橋)’는 더 이상 고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A 스타트업의 사례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 기업은 사업 초기, 신생 벤처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공급 조건을 수락해준 협력업체 덕에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리즈B 투자를 받은 직후, 이 업체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대기업과 손을 잡았다. 당시 대표는 "사업 경쟁력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설명했지만, 그 결정은 ‘은혜를 망각한’ 사례로 업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감사의 부재’는 기업 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고성과자 위주의 성과평가제, 희생을 감내한 팀워크보다 실적만을 강조하는 보상체계는 은혜와 수고를 숫자 밖으로 밀어낸다. 이러한 문화는 조직 내부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구성원의 이탈로 이어진다.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어 관계를 소모품처럼 다루는 문화는 결국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협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되묻고 확인해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우리는 누구 덕에 여기까지 왔는가?"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그중에서도 고객, 직원, 협력사는 기업이 성립하고 유지되기 위한 3대 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의 충성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있다. 특히, 위기를 넘기고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이들에 대한 ‘처우’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객에 대한 충성은 때로는 가격 정책, 때로는 서비스의 질로 드러난다. 한 중견기업은 초기 충성 고객들에게만 제공하던 멤버십 혜택을, 이후 신규 유입을 위해 폐지했다. 기존 고객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고객 이탈률은 크게 증가했다. 기업이 고객과 맺은 관계는 일종의 신뢰 계약이다. 고객이 위기를 함께 견디며 기업을 지탱해주었다면, 그에 합당한 존중이 필요하다.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원은 가족입니다’라는 구호 아래 주 6일 근무와 야근을 감수하며 버틴 초기 직원들이, 기업 성장 이후 구조조정 1순위로 밀려나는 경우는 흔하다.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론 비용 절감을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기업문화와 평판에 치명적인 손실을 남긴다.
협력사는 더욱 복잡하다. 사업 초기 이해관계가 맞아 함께한 협력업체가, 대규모 공급에 대한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배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업체는 성장에 기여한 중요한 파트너였으며, 단가 경쟁력 외에도 유연성, 대응력, 관계 신뢰도 등 무형의 자산을 제공해왔다. 그것이 무시되면 ‘배은망덕’이라는 낙인이 남는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기업은 과연 누구에게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하는가?" 충성은 어느 한 집단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함께 길을 걸어온 모두에게 균형 있게 돌아가야 한다.
기업의 성장은 예기치 못한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곁을 지켜준 파트너가 있다면, 그들은 단순한 이해관계자를 넘어 ‘운명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일정 수준의 성장을 이루면, 과거의 고마움을 잊고 효율성이나 수익성을 이유로 이들을 쉽게 배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기 이익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장기적 신뢰 자산 구축에는 독이 된다.
실제로 국내 C소셜벤처는 설립 초기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소규모 제조업체 D사와의 파트너십 덕분에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일반 대기업이라면 불가능했을 유연한 납품 조건과 장기 외상 계약은 C사에게 생명줄과 같았다. 이후 매출이 수직 상승하면서 다수의 대형 업체들이 공급 제안을 해왔지만, C사는 D사와의 계약을 계속 유지했다. 심지어 설비 투자를 위한 자금을 C사가 일부 지원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사례는 ‘비즈니스의 인격화’를 가능하게 한다. 파트너를 단순히 교체 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위기를 극복한 ‘공동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브랜드 스토리텔링에도 활용되어, 고객으로부터 더욱 진정성 있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기업이 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협력사나 고객과의 '신뢰 연대기'를 기록하고 내부적으로 공유한다. 둘째, 특정 성과의 배경에 있었던 파트너들의 기여를 사내외 커뮤니케이션에 포함시킨다. 셋째, 관계 유지의 비용을 ‘미래 투자’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제도를 마련한다.
“함께 고생한 사람과 함께 웃어야 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실천한 기업은, 단순한 이익을 넘어선 ‘감사의 힘’을 경영자산으로 삼고 있다.
‘감사의 경영학’은 단순히 도덕적인 이상이 아니다. 실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브랜드 충성도, 내부 조직의 안정성 등 다양한 성과 지표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기업은 여전히 드물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북유럽의 한 중소 식품기업이다. 이 기업은 코로나19 당시 원재료 공급 중단 위기를 겪었으나, 15년 넘게 거래해온 중소 농가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 덕분에 공급망을 빠르게 복구할 수 있었다.
해당 기업은 매년 협력 농가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고, 경영진이 직접 농장을 찾아 감사와 개선 제안을 주고받는다. 그 결과, 어떤 대형 유통사보다 더 견고한 공급 시스템을 유지하며, 업계에서 ‘신뢰 기반 생산 모델’의 표본으로 불린다.
또한 일본의 한 중견 전자부품 제조사는, 입사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들을 위해 고객사와 공동으로 감사 행사를 개최한다. 여기서 고객사 임직원들이 장기 근속자들에게 직접 감사 메시지를 전한다. 이 제도는 직원들에게 자부심과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동시에 고객사와의 유대도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
이처럼 ‘감사의 경영’은 감성적인 접근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와 협력이라는 비가시적 자산을 키우는 전략이다. 고속 성장과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에도, ‘감사’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기업의 생존과 성공을 좌우할 수 있음을 이들 사례는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질문해야 한다. “기업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매출 곡선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함께했던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감사의 경영학’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가장 큰 시사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