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싫은데도 도와주고 나서 속으로 계속 후회해요.”
“저도 바쁜데 ‘괜찮아, 해줄게’라고 말해놓고, 결국 제 일은 밤샘하면서 하게 돼요.”
이런 이야기는 착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누군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도 도와주고, 자기 감정을 참고 미소로 반응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면 결국 무너지는 건 ‘자기 자신’이다.
‘착한 사람 증후군(Nice Person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신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며, 갈등을 피하려고 무조건적으로 착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성향은 겉보기엔 배려 깊고 따뜻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끊임없는 불안과 자책, 피로가 쌓인다.
거절을 못 한다는 건, 선택권이 나에게 없다는 뜻이다. 관계는 평등한 선택이 오갈 때 건강해지지만, 한쪽만 끊임없이 양보하고 수용하면 균형은 금세 깨진다. 그리고 깨진 균형은 곧 무너지는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지나쳐서 나를 잃어버리는 관계가 된다면, 그것은 착함이 아니라 자기 상실이다.

착한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아니라고 하면 기분 나빠할까 봐요.”
“거절하면 나쁜 사람 되는 것 같아서요.”
이 말 속엔 한 가지 심리가 숨겨져 있다. 바로 미움받는 것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다. 어린 시절부터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 “싫은 소리는 하지 마라”, “다른 사람 먼저 생각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어온 우리는 착함과 도덕성을 동일시하게 됐다. ‘싫어요’는 무례하고, ‘안 돕겠다’는 이기적으로 보인다. 결국 우리는 ‘거절’ = ‘나쁜 사람’이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고정시켜버렸다.
‘착한 사람’은 종종 무례한 사람을 키운다.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주기만 하면, 타인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도와달라고 했을 뿐인데 화내거나, 왜 싫은지 따지거나,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이미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이 관계는 나의 자유와 감정을 존중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는 지켜야 할 가치보다 끊어야 할 신호일 수 있다.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 더 중요한 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거절을 통해 자기 경계를 지키고, 감정을 보호하며, 삶의 주도권을 유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하면 인간관계가 끝날까 봐 두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거절 한 번에 무너질 관계라면, 그건 이미 불균형한 관계였던 것이다. 진짜 건강한 관계는, “이번엔 안 될 것 같아”라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란, 언제나 다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와 타인 사이의 거리와 책임을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 삶을 지키면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싫어요'를 말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거절은 단지 단어의 문제가 아니다. ‘싫다’고 말해도 관계가 상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있다. 거절의 핵심은 공격이 아니라, 명확한 경계 선언이다. 아래는 관계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보호할 수 있는 거절의 표현들이다.
“그거 좋은 제안인데, 이번에는 내가 좀 여유가 없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지금 내 일도 처리하기 힘들어서 미안해.”
“그 일은 다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이번에는 빠질게.”
“너무 자주 연락이 오면 좀 힘들어. 내가 필요할 때 연락할게.”
이처럼 ‘감정 + 이유 + 제안’의 구조로 말하면 거절은 훨씬 부드러워진다. 중요한 건 타인의 기분이 아니라, 나의 한계와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연습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죄책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뇌는 이건 나를 위한 건강한 선택이라고 학습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감정의 근육이 자라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나를 지켜라.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속에 자기 희생과 피로가 계속된다면, 그건 더 이상 착함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버려가며 만든 착함은 상대에게도 좋지 않다. 상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점점 더 억울해진다.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당신이 거절한다고 해서, 진짜 인연은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당신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진짜로 당신을 존중해주는 사람만 곁에 남게 된다.
이제 연습해보자. 당신이 오늘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이번엔 내가 할 수 없어.”
이 한 마디가 당신의 감정과 삶을 지키는 시작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