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교실에 미래를 묻다: 폐교의 반전, 지자체의 창의력이 답이다

'아이 없는 학교'에서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

폐교 활용의 핵심은 '지역 맞춤형 전략'에 있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한 키워드는 '창의력'이다.

 

학교에 다닐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된 학교 모습         사진=지자체 온동네 뉴스

 

'아이 없는 학교'에서 '사람 모이는 공간'으로

"어느 날 갑자기 학교 종이 울리지 않았다." 한 마을 주민의 짧은 말은 지방 소멸의 슬픈 현실을 압축한다. 저출생과 인구 유출, 그리고 고령화라는 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대한민국 전역에는 더는 학생이 없어 문을 닫은 학교, 일명 '폐교'가 3,800여 곳에 이르렀다. 교실엔 아이들 웃음소리 대신 침묵이 흐르고, 운동장은 잡초로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 이 폐교가 도시보다 더 뜨거운 창조적 실험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폐교는 단순한 건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지역의 공동체가 세대를 이어 함께했던 장소이자, 교육과 성장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역사가 끝났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폐교는 '빈 공간'이 아닌 '가능성의 공간'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재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이제 지자체의 역할은 폐교를 새로운 미래의 플랫폼으로 바꾸는 일이다.

 

충북 괴산의 한 폐교는 산촌체험학교로 탈바꿈해 연간 2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은다. 전북 무주는 폐교를 국제 태권도 수련장으로 활용해 세계인이 찾는 명소가 됐다. 공간이 비었다고 해도, 사람의 상상력이 채워지면 그곳은 얼마든지 살아 숨 쉬는 장소로 거듭날 수 있다.

 

성공하는 지자체는 폐교를 이렇게 활용한다

폐교 활용의 핵심은 '지역 맞춤형 전략'에 있다. 단순히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닌, 그 지역의 자산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공간의 성격을 재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홍천군은 숲과 계곡에 둘러싸인 폐교를 자연생태 체험장으로 운영하면서, 도시 아이들의 주말 캠프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남 고흥의 한 폐교는 실버세대를 위한 스마트 복지관으로 전환해 고령자들이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성공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지역 주민이 '손님'이 아니라 '주체'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리모델링 계획부터 운영까지 지역주민이 함께한 프로젝트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외부 기업이 무분별하게 진입하거나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난 폐교 활용은 결국 또 다른 '죽은 공간'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성공 사례 뒤에는 더 많은 실패가 있다. 경북 한 지역의 폐교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지만, 접근성 부족과 지속적인 콘텐츠 개발 실패로 3년 만에 다시 빈 공간이 되었다. 전남의 또 다른 폐교는 초기 투자비만 7억 원을 들였지만, 운영 주체 간 갈등과 예산 부족으로 현재는 관리만 겨우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실패 사례들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지속적인 운영비 확보, 전문 인력 배치, 지역민 간 합의 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 창의력은 곧 지속가능성이다

지방이 살아남기 위한 키워드는 '창의력'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면, 그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폐교는 그런 의미에서 창의력의 시험대다. 지금까지의 행정은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를 따졌다면, 이제는 '어떻게 지역의 개성과 사람의 삶을 담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지자체가 관행적인 방식으로 폐교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행정 절차는 복잡하고, 민간 참여는 제한적이며, 폐교에 대한 '재생'보다는 '보존'이나 '방치'에 가까운 정책이 이어진다. 이는 결국 예산 낭비로 이어지며, 지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첫째, 예산 조달 방식의 혁신이다. 초기 투자비만 지원하고 끝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운영비를 3~5년간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지속가능형 예산 모델'이 필요하다. 민간 투자와 크라우드펀딩, 사회적 기업 연계 등 다양한 재원 조달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둘째, 법적 규제 개선이다. 현재 폐교 활용은 교육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수 부처의 복잡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원스톱 서비스'로 통합하고,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특례 조항이 필요하다.

 

셋째, 전문 인력 육성이다. 폐교 활용 사업은 공간 기획부터 콘텐츠 개발, 마케팅까지 전문성이 요구되는 복합 영역이다. 지자체는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거나 외부 전문 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서울 마포구의 '서울혁신파크'처럼 혁신 거점 공간으로, 또는 경남 하동의 폐교처럼 전통과 청년 창업이 어우러지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각 지역의 문맥에 맞는 실험이 축적될수록, 폐교는 단순히 '없어진 학교'가 아닌 '지역의 상상력 지표'가 된다.

 

청년 귀촌인이 늘고, 예술인이나 디지털 노마드가 지역을 탐색하는 지금이 기회다. 지자체는 폐교를 그들의 베이스캠프로 설계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교육과 복지, 창업과 문화가 맞닿은 이 공간은 미래 지역사회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

 

실행 로드맵: 어떻게 할 것인가

창의적 아이디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단계: 지역 자산 진단과 주민 수요 조사
폐교 활용 사업은 철저한 사전 조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해당 지역의 인구 구조, 산업 현황, 문화적 자산을 분석하고, 주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공간의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워크숍, 청년층 간담회, 귀촌인 인터뷰 등 다양한 의견 수렴 채널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2단계: 운영 주체 확보와 파트너십 구축
성공적인 폐교 활용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운영 주체가 필수다. 지역 시민단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육성하거나, 외부 전문 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청년 창업가나 예술인 등 창의적 인력을 끌어들이는 인센티브 제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3단계: 단계별 투자와 성과 관리
대규모 초기 투자보다는 작은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확장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첫 해에는 기본 인프라 구축과 시범 프로그램 운영, 2~3년차에는 본격적인 사업 확장, 4~5년차에는 자립 기반 마련이라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각 단계마다 명확한 성과 지표를 설정하고,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사업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학교의 끝이 아닌, 지역의 시작이어야 한다

폐교는 사라진 교육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점이다. 빈 교실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결국 지자체의 상상력, 정책의 의지, 그리고 지역민의 참여에 달려 있다.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공간을 둘러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가능한 운영 체계, 안정적인 재정 기반, 전문적인 관리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되,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폐교 활용은 단순한 공간 재생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종합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자체는 묻지 말고 대답해야 한다. "당신의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폐교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앞으로 누가 써 내려갈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그 이야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답은 창의력에 있지만, 그 창의력이 현실이 되려면 치밀한 준비와 꾸준한 실행이 필요하다. 폐교의 미래는 결국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작성 2025.07.09 09:30 수정 2025.07.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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