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입니다.
일 년 중 딱 반년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지만 정년퇴직을 앞둔 저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반년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고, ○○회사 직원의 신분으로는 고작 반년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갑니다.
연초에는 ‘이제 일 년 남았네’, 봄에는 ‘이 봄이 직장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봄이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 마무리를 잘하고, 다가오는 인생2막을 담담하게 맞이하자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오판이었습니다.
30년 다닌 직장을 퇴직하는 것, 그리고 처음 경험하게 될 인생2막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앞두고 심리적으로 동요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지요. 직장인에게 회사는 그 사람의 전부였던 시절을 통과했던 사람에게 ‘퇴직’이라는 단어 앞에는 ‘지진 같은’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당사자가 되어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충북 괴산의 화양계곡을 다녀왔습니다.
다리 밑 너른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자연멍’에 빠졌습니다.
바늘조차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숲, 돌과 모래를 움켜쥐고 자라는 풀더미,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시원하게 흐르는 시냇물을 보고 있으니 시나브로 마음에 평화가 고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흘러가는 물은 우당탕탕 소리를 내지르며 급하게 흘러가고, 계곡 위에서 흘러오는 물은 윤슬을 반짝이며 고요히 밀려오는 것을 문득 보았습니다.
아! 흘러가는 물은 쏜살같고, 흘러오는 물은 구름에 달 가듯 유유했습니다.
그 순간 저의 일상이 소란스러웠던 이유가 자명해졌습니다.
물은 퇴직을 앞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너는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어서 심란한 것이라고.
흘러가는 물은 요란하고 얄미울 정도로 빨리 스쳐 가는 법이라고.
너는 퇴직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있거나, 퇴직 이후가 퇴직 이전처럼 평온하길 바라는 헛된 기대감으로 불안한 것이라고.
물끄러미 듣는 제가 미덥지 않아 보였는지 물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네게로 향해 흘러올 시간은 소리와 형체가 없어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저 시냇물처럼 윤슬로 반짝이며 반드시 너에게 당도할 것이라고.
그러니 물을 거슬러 올라가라고. 더러 물에 옷이 젖거나 웅덩이에 휘청거릴 때도 있겠지만 멈추지 말라고.
제가 조만간 맞이할 퇴직과 그 이후의 세계는 화양계곡의 상류 어디쯤 있을 것입니다. 그곳은 아직 오지 않았고, 경험하거나 알지도 못하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치고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비단 물고기만 그럴까요?
자연의 생명원리를 깊이 탐구하는 숲철학자 김용규는(주) “살아있는 존재들은 모두 새로워지려 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더러 아픔이 있더라도 기어코 모험을 감행”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저는 퇴직을 인생의 벼랑처럼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벼랑 끝에서 모험을 감행하여 영웅이 된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기억났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메시지가 제 가슴속에서 부활합니다.
‘네 삶의 영웅이 되고 싶다면 새로워지는 모험을 감행하라고!’
‘너도 나처럼 새로워지려는 아픔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야!’
(주) 김용규.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디플롯. 2025.5.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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