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AI 시대,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학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는 제목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익히 들어왔던 ‘국·영·수’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국어’를 1순위로 꼽습니다.
그는 강의 말미에 “국어를 잘하려면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문학은 언어의 섬세함을 익히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문학입니다.
21세기에도 살아남고 싶다면, 다시 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아서였을까요. 지난 편지의 ‘채권-채무’와 관련지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을 읽었습니다.
소설의 중심에는 ‘핍’이라는 소년이 있습니다. 가난한 대장장이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탈옥수 ‘프로비스’를 돕게 됩니다. 그 인연으로 막대한 유산을 받습니다. 이후 런던에서 신사의 삶을 누리게 되지만, 그 유산의 출처를 알게 되면서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토록 바라던 신분 상승의 기회가 다름 아닌 탈옥수 프로비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은 순간, 핍은 수치와 혐오,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가 느꼈던 내면의 소리는 이렇습니다.
“그(프로비스)의 사슬에 내가 함께 묶여 있다고 생각하자 공포와 후회와 절망이 나를 짓눌렀다.”
저는 ‘프로비스’라는 인물을 오늘날의 한탕주의 혹은 사행성의 은유로 해석했습니다.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줄 것처럼 다가오는 유혹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감당해야 할 무게가 빠져 있습니다.
소설은 말합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유산은 돈이나 신분이 아니라 정신적인 유산이 더 소중하다는 걸 말이죠. 가치관이 배제된 물질적인 유산은 그저 겉모습만 화려해 보일 뿐입니다.
그러다, 다시금 정부가 발표한 ‘빚 탕감’ 정책이 떠오릅니다. 문득, ‘빚을 탕감받은 이들에게 문학 읽기와 쓰기를 강권한다면 어떨까 싶더군요. 경제적 구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적 성찰과 회복의 시간을 함께 부여하는 겁니다.
고전을 읽고, 그 인물의 감정에 이입해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것. 문학을 통해 자신의 빚을 돌아보게 한다면, 이게 바로 진정한 “탕감”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만약 제가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치유코칭 100일쓰기’, ‘인문의 숲’, ‘나세네 대학원’과 같은 과정을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조건부 빚 탕감 정책을 시행해보고 싶더군요.
끝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어떤 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유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려주고 싶은지 말입니다. 오늘 하루, 문학이 던지는 질문 속에서 자신만의 ‘위대한 유산’을 떠올려보는 목요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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