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타국 땅에 도착한 지 오늘로
딱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원했던 유학을 목적으로 왔기에, 보호자로서
동행한 이곳의 삶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습니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정작 제 자신에게 적용해보니, 낯선 땅에서 마주하게
되는 불투명성과 불확실성이 이방인의 일상에 내장된 기본값처럼 느껴집니다.
외국이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배가 불러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같은 것이 자꾸만 밀려오지요. 정보통신
기술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된 시대, 터치 한 번이면 바다 건너 가족과 영상 통화를 무제한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태평양을 12시간 가까이 날아온 제
몸은 한국과의 물리적 거리감을 선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마음은 여행자의 마음과는 다릅니다. 언제 돌아갈지 정해진 여행자는 타국에서의 경험을 색다른 감각이나 여가로 받아들이지만, 돌아갈 시점을 알 수 없거나 마땅히 돌아갈 곳이 없는 이방인은 새로운 땅에서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면 쉽게 방황하거나
부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궁리하게 됩니다. 이방인에 머물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던 중 문득, 한국에서 해외로 가져갈 짐을 챙기면서 제가 아끼는 옷들과 소중한 물건들을 은근슬쩍 화물 배송 목록에서 뺐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가져가서 쓰다 버리고 올 텐데, 좋은
건 두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작동한 거지요.
저도 모르게 저를 이방인으로 설정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언제든 돌아올 준비를 하는 이방인의 마음엔 ‘내
집은 이곳이 아니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라는 메아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테고, 그 마음가짐은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망설이게 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외국에 도착한 지 고작 일주일. 이방인의 모드에서 갑작스레 정착민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고, 또
정착민 되기가 그다지 끌리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방인의
동굴에서 걸어나와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길을 탐구하고 싶어집니다. 철학자 이진경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유목민 개념을 빌려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이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을 ‘유목주의(노마디즘)’라고 설명했지요.
불안감에 휩싸이기 쉬운 이방인의 감정도, 안정과 소유를 지향하는 정착민의 욕망도, 결국 그 감정들 또한 순간순간
나를 통과해 지나가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쪽에도 고정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움직임을 이어 나가는 ‘유목민 되기’는 장소나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태도’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이 낯선 땅에서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삶이라는 지형 위에서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가.’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한번 되물어 보시지요.
K People Focus 김선영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케이피플 포커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 시 표기 의무
■ 제보
▷ 전화 : 02-732-3717
▷ 이메일 : ueber35@naver.com
▷ 뉴스홈페이지 : https://www.kpeoplefocu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