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D와 ESG, 이제는 정확히 구분할 때다: 교육과 경영을 잇는 개념 정리

착한 말들의 착각: ESD와 ESG, 용어는 비슷해도 본질은 다르다

 

착한 말 뒤에 숨은 혼동: ESD와 ESG는 무엇이 다를까?

“요즘은 ESG가 중요하대”, “학교에서도 ESG 교육을 한대”, “우리 회사는 ESD 실천 중이야”
이처럼 뉴스나 일상 대화 속에서 ‘ESD’와 ‘ESG’라는 용어가 마구 뒤섞여 쓰이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말’이라는 인상 때문에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개념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둘은 그 뿌리부터 다르다.
간단히 말하자면, ESD는 교육의 개념이고, ESG는 기업 경영의 지표다.
둘 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적용 범위, 주체, 목표가 전혀 다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마치 축구 규칙을 들고 농구 경기를 심판하겠다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ESD VS ESG  ©교육포커스  

 

 

 

ESD는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즉 ‘지속가능발전교육’이다. 

유네스코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강조해온 개념으로, 환경 문제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교육을 통해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어린이, 청소년, 교사, 지역사회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교육 철학이다.

반면 ESG는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의 약자로, 기업이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측면에서 얼마나 책임 있고 지속가능하게 경영하는지를 측정하는 투자 지표다. 

즉 기업의 행동을 평가하기 위한 ‘룰북’에 가깝다.이처럼 ESD와 ESG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의 이상을 향하지만, 달리는 차선은 엄연히 다르다.

 

학교의 ESD, 기업 ESG: 목적과 대상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도 최근 ESD는 학교 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생태전환교육’이나 ‘기후위기 대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초·중등 교육에 녹아들고 있으며,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생태·환경 관련 내용이 강화됐다. ESD는 단순히 환경을 아끼자는 말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문제 해결력, 공동체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캠페인을 단순히 따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줄여야 하는지, 줄이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지, 나와 지역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까지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미래 세대가 ‘지속가능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라기 위한 핵심 기초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다.

반면 ESG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업의 책임투자자에게 신뢰를 주는 기업 지표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A기업이 ESG 경영을 한다면, 그 기업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설비에 투자하거나,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인사제도를 정비하며,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이는 투자자의 선택을 받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다.

ESD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철학’이고, ESG는 ‘기업을 평가하는 경영 기준’이다.

 

ESG만 외치다간 생태 감수성 놓친다: ESD가 필요한 이유

최근 학교 현장에서 “우리는 ESG 교육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업 중심의 ESG 개념이 ‘멋져 보이기’ 때문에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념의 왜곡이자 교육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학생은 기업이 아니며, 이윤 추구의 주체도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ESG 경영 전략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는 철학과 태도다.

ESD는 미래 세대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힘을 갖게 하는 데 집중한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구조적 문제를 보는 눈, 대안을 설계하는 능력, 다른 이들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ESD의 핵심이다.

만약 학교가 ESG 교육에만 집중한다면,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가받는 객체로만 남게 된다. ‘좋은 행동’은 하지만, 왜 그 행동이 필요한지, 어떤 더 나은 선택이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게 된다. 즉 ‘생태 감수성’이 자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 중심의 논리에 맞춰 사고하게 되기 쉽다. “이산화탄소 줄이면 기업 점수 올라간다”는 식의 논리는 교육이 아니라 훈련에 가깝다. 교육은 훈련과 달리 사유와 성찰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헷갈리지 말자! 지속가능성을 향한 두 길의 교차점과 분기점

물론 ESD와 ESG는 전혀 무관한 세계가 아니다. ESD로 길러진 시민들이 ESG의 기준을 이해하고, 그 기준이 강화된 사회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선순환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ESD를 경험한 학생이 자라 사회인이 되었을 때 ESG를 중시하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창업할 수 있다. 또는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 ESG가 부실한 기업의 제품을 거부하고, 윤리적인 기업을 지지할 수 있다.

이처럼 ESD는 ESG가 작동하기 위한 기초체력이 된다. 즉 ESD는 시민의식의 근육, ESG는 기업의 윤리 기준이다. 둘 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수단이지만, 출발점과 도착점, 실행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혼용하면, 교육은 방향을 잃고 기업은 면피용 캠페인에 그치게 된다.
ESD를 ESG처럼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의미가 떨어지는 게 아니고, ESG가 돈과 성과 중심이라고 해서 그 자체를 폄훼할 이유도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다할 때, 지속가능한 미래는 비로소 가능하다.


 

개념을 제대로 아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용어 하나, 개념 하나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 ESD와 ESG는 비슷한 단어지만, 그 철학과 실천 대상은 전혀 다르다.
학생에게 ESG를 가르치는 대신 ESD로 생태 감수성과 시민의식을 키우고, 기업에는 ESG 기준을 적용해 책임 있는 경영을 요구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혼동은 무지를 낳고, 무지는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이제는 헷갈리지 말자. 생존을 위한 기본부터 정확히 알고 가야 할 때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포털(https://en.unesco.org/themes/education-sustainable-development)과 

한국ESG기준원(https://www.cgs.or.kr/main/main.jsp)을 참고하세요.

  • esg vs esd.jpg (380.9KB)
작성 2025.06.30 20:25 수정 2025.06.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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