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일상 대화에서 "물론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명확히 설명하자면"과 같은 특정 표현의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이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ChatGPT)의 특징적인 화법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현상이다. 지나치게 정중하고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AI의 언어 습관이 인간의 소통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 스며든 AI의 말투, 그 시작과 배경
2022년 말 출시된 챗GPT는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대화 능력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챗GPT 앱 출시 단 28일 만에 약 3,00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이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버금가는 빠른 확산 속도였다.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요리법 질문부터 법률 자문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매일 AI와 상호작용하면서, 그 소통 방식이 점차 내재화되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기업의 팀 채팅이나 이메일, 심지어 사적인 대화에서조차 인간과 AI의 언어적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업무 효율과 명확성, AI 화법 확산의 동력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우선, 원격 근무와 디지털 기반 소통이 보편화되면서 텍스트를 통한 명확하고 정중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커졌다. 챗GPT의 특징인 명료성과 정중함은 이메일이나 슬랙(Slack)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경제적으로는 기업들이 'AI 활용 능력'을 중요한 업무 역량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점이 주효했다. 최근 채용 공고에서는 'MS 오피스 활용 능력'과 더불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로 인해 직장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AI 친화적인 언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개성의 상실인가 소통의 진화인가, 전문가들의 진단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새로운 언어 진화의 단계로 분석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수잔 리 박사는 "언어는 항상 시대의 도구를 반영한다"며, "15세기 인쇄술이 철자법을 표준화했듯이, AI 챗봇은 오늘날 디지털 글쓰기의 어조와 구조를 표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관련 데이터 역시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언어 및 기술 연구소(Language & Technology Institute)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문직 종사자의 42%가 더 세련되고 중립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챗GPT의 답변을 참고하여 이메일을 작성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식 근로자의 60%는 중요한 이메일을 보내기 전 챗GPT의 표현을 검토한다고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55%는 명확성과 전문성을 이유로 친구의 비공식적인 문자 메시지까지 'AI처럼' 수정한 경험이 있다고 인정했다.
AI 화법의 채택은 소통의 명확성을 높이고 갈등을 줄이며 업무 효율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 방언이나 개인 고유의 어조가 사라지고, 과도한 정중함이 진솔한 피드백을 가리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래 세대는 격식 없는 표현과 속어가 자유롭게 사용되던 '챗GPT 이전'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우리의 대화가 알고리즘을 닮아 보편적으로 명료해지는 대신, 고유의 개성을 잃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AI의 언어를 형성하는 것인지, 혹은 AI가 우리의 언어를 재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